냉장고의 효능 / 최형심
잔소리쟁이 남편을 냉장고에 넣기로 했다. 1미터 70, 키에 맞는 S전자 냉장고를 주문했다. 딩동! 특제 냉장고가 도착했다.
맛이 간 입술은 아래 칸 신선실, 휘두르기 좋아하는 왼손은 야채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밀어 넣었다. 집이 고요하다.
아침마다 16년 숙성된 남편을 해동시킨다. 먼저 그의 입을 넣고 15분짜리 해동에 타이머 눈금을 맞춘다. 땡! 해동된 입에서 술 냄새와 니코틴 냄새가 확 풍긴다. 밤새 토하다만 라면발이 엉경있다. 고춧가루 확 뿌려 볶음용으로 랩을 둘둘 싸놓는다. 부풀었던 집이 가라앉는 다.
출근시간 20분전. 땡! 밥상을 엎던 발을 해동한다. 타임오버! 발길질하는 불안한 발. 간이 덜 배었군. 엎질러진 남편을 주워 담아 냉동실 깊숙이 넣는다.
전자레인지를 돌린다. 땡! 밤새 고스톱을 치던 손이 꾸물꾸물 화투장을 찾는다. 눈 깜짝할 사이 내 뺨을 갈긴다. 얼얼하다. 나는 설익은 남편을 랩으로 묶는다. 냉동고의 온도를 확 올린다. 으, 365일 지겨운 메뉴!
<현대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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