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時調208 로트와일러/김춘기 로트와일러/김춘기 강남 고관 나리 새 식구 입양했다네. 주인에게 순종하며 집 잘 지킨다는 바리톤 목청 로트와일러. 소파에서 나리와 뒹굴며 피붙이처럼 뜨거운 눈길을 이었다. 휴일이면 윤기 나는 몸매로 강변에서 발맞췄고, 나리가 기뻐하면 검은 꼬리 얼른 흔들며 미소 보태면서도 머나먼 독일 쪽 바라보며 향수에 젖기도 했다. 한 줄기 바람에도 귓바퀴 뱅글뱅글 돌리며 거실 창 너머로 시선 고정하던 녀석.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태업 시작했다. 무음의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답답한 나리, 녀석과 동물병원 노크했다. 며칠 두고 견공 눈빛 살피던 수의사, 난감한 표정으로 귓속말 내민다. 주인이 도둑님인데 차마 누굴 짖습니까? 2025. 4. 10. 적색경보/김춘기 적색경보/김춘기 남유럽 목이 탄다, 사하라에 배가 떴다. 파미르 척추에 실금이 간다. 그린란드에 초록빛 우산 가게 들어선다. 북태평양 쌍둥이 태풍이 왕눈 부라린다. 카리브해 허리케인 여름내 루이지애나 해안을 삼킨다. 방글라데시 사이클론은 갠지스강 들쑤시며, 피 울음 토한다. 파푸아뉴기니 정글이 들개처럼 쏘다니는 쓰나미의 뒷발질 피해 온몸 뒤튼다. 지구가 응급 환자인데 병원 모두 문 닫았다. 2024. 8. 11. 애월은 애월은 한라산 오름 물결이애월 바다 만들었다 새별-천아-고내-노꼬메-바리메-노로-한대-검은데기 사계절애월 가슴엔 태평양이 철썩인다 2024. 6. 18. 마음은 꽃밭이라오/김춘기 마음은 꽃밭이라오 이팝나무도 근심 어린 국립암센터엔 이 방, 저 방 팔도 사투리가 들고 난다. 겨울 들머리 난소암 진단받은 어머니 입원하셨다. 영등포역 뒤 영일아파트 아줌마, 고흥 녹동시장 떡방앗간 주인, 제주 한림 월령포구 상군 해녀 할망, 울진 금강송면 평생 농부 필남이 엄마, 양구 파로호 언덕 위 우즈베키스탄 댁 며칠 동안 여자 6인용 병실 식구였다. 어제 오전엔 제주 상군 해녀가 며느리 손에 이끌려 퇴원했고, 정오 지나 녹동시장 떡집 주인 중환자실로 급히 실려 갔다. 그리고 홀아버지와 함께 온 독산동 눈 큰 아가씨 목석같은 표정으로 환자복 갈아입고, 신병처럼 침상에 이름표를 달고 앉았다 항암제 링거에 매달려 정발산성당 신임 수녀처럼 손 모으는 절절한 기원과 벽시계 초침 소리만 .. 2024. 4. 30. 이전 1 2 3 4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