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31 냉장고/이재무 냉장고/이재무 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그녀의 울음은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나는 그녀처럼 헤픈 여자를 본 적이 없다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그녀의 내부를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 몸속엔그렇고 그런 싸구려 내용물들이진설되어 있다 그녀의 몸엔 아주 익숙한내음이 배어 있다 그녀가 하루 24시간노동을 쉰 적은 없다 사시사철그렁그렁 가래를 끓는 여자언젠가 그녀가 울음을 그칠 날이 올 것이다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그녀들처럼 흔한 것도 없으니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아무도 그 울음에 주목하지 않는다살진 소파에 앉아 자정 너머의 TV를노려보던 한 사내가 일어나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그녀에게로 간다그녀 몸속에 두꺼운 손을 집어넣는다함부로 이곳저곳 더듬고 주물러 댄다 2025. 1. 11.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이신율리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코비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를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린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탄 새가 매운 바닥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 2025. 1. 10. 반가사유상/최찬상 반가사유상/최찬상 면벽한 자세만철로 남기고그는 어디 가고 없다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생각이므로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한 자세로녹이 슬었으므로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반짝이겠다 201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검지와 중지를 모아 오른쪽 뺨에 갖다 대고 지그시 눈을 감고 사유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봅니다. 오뚝한 콧날과 앙다문 입술 오른쪽 발목에 왼손을 얹고서 깊은 생각에 빠져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시인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고 합니다. 6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그가 세월의 풍파에 의해 녹.. 2025. 1. 10. 럭키슈퍼/고선경 럭키슈퍼/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맨발이면 어떻습니까?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 2025. 1. 10. 이전 1 2 3 4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