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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40

잠의 계좌 번호/마경덕 잠의 계좌 번호/마경덕 이 도시는 잠에 인색합니다 늦도록 불을 켜두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거나 밤새 춤을 춰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한 집 건너 카페와 카페, 이디야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매가커피 엔제리너스 할리스 커피빈 빽다방… 혼자, 혹은 둘러앉아 쓰디쓴 커피를 쭉쭉 빨고 있지요 도시는 카페인으로 검게 물들고 거리에는 가출한 잠들이 몰려다닙니다 최저시급으로 불면을 채용한 24시 편의점과 별의별 것을 다 파는 다이소에서도 잠은 팔지 않습니다 암막 커튼을 치고 밤을 눕혀도 잠을 굶는 날이 많아졌어요 점심시간은 노루 꼬리 같아요 밥을 건너뛴 시간에 어디에서 쪽잠을 잘 수 있을까요 도시는 잠을 버리고 잠을 빼앗고 잠을 사려는 사람이 .. 2025. 7. 13.
AI-갈등/이인철 AI-갈등/이인철 사람 면접자는 ai 면접관에게90도로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는다ai 면접관은 질문한다ai에 대한 존경심은 있는지ai 인류에 대해 인정하는지ai가 만든 법을 존중할 것인지 ai는 사람의 확대된 동공 서명란에 합격 사인을 한다 채용된 사람은 ai에게 다시90도로 인사를 하고 뒷걸음질로 나간다 시집 『AI 인류』 2025년 시인수첩 시인선 2025. 7. 13.
못의 마음/김민하 못의 마음/김민하 툭툭, 망치가 칠 때 아프다고 엄살 부리며 얼른 등 구부리는 못이 있다 살살 발끝만 넣고 힐끔 눈치 보다가 수건 한 장만 걸어도 톡, 떨어지는 못이 있다 꿋꿋이 참고 어깨까지 잘 박혀 뻐꾸기시계를 들어주는 못이 있다 꼭꼭 안 보이게 온몸 다 감춰 누군가 쉴 나무 의자를 만드는 못이 있다 다 마음먹은 그대로 2025. 7. 8.
비밀 일기장/권예자 비밀 일기장/권예자  나무는쉽사리 제 이력을 말하지 않는다특별한 신분이 되고나서야개인 등록증이 만들어질 뿐그들의 이력 뽑아 볼 일 없다나무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은거짓 없는 일기를 쓰는 일바람이 어루만진 감촉구름이 걸터앉아 들려준 말꽃들이 내뿜던 향기로운 추파와달빛이 작곡한 세레나데를 기록한다폭풍에 맞서던 처절한 기억딱따구리가 쪼아낸 몸피의 통증도제 몸 갈피에 촘촘히 새겨 넣는다숫자를 배우지 않아이익과 손해를 모르고걷는 방법도 몰라늘 제자리에서 늙어간다누군가 달라고 손을 내밀 때마다망설임 없이 나누어 주는 큰손을 가졌다세상과 작별한 후에 비로소 공개되는 나무들의 비밀일기장​시집 ​『비밀 일기장』2015. 지혜 2025.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