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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것들/기타

적자인생 서민살이

by 광적 2008. 8. 11.

적자인생 서민살이

 

   "오늘은 본전치기는 넘겨야 할 텐데요."
   지난 6일 오후 4시 서울 은평구 G운수 차고지. 영업용 택시를 모는 임찬성(49)씨가 시동을 걸었다. 깊은 한숨과 힘없는 말투, 축 처진 어깨. 임씨는 앞으로 11시간 이상을 운행해야 하는데도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보였다. 운전에 나서긴 하지만, 오늘 하루 오히려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LPG값이 오른 데다, 불경기에 시민들이 택시 이용을 줄이고 있어 요즘 수입은 처참한 지경이다.
    지난 6일 기자는 임씨의 택시에 동승했다. 그는 '오후반' 근무였다. G운수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근무시간이 나눠져 있다. 오후반 근무시간은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다.

▲ 지난 6일 오후 택시 운전사 임찬성씨가 서울 은평구의 한 대형 마트 앞에 길게 늘어선 택시 대열 끝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임씨가 택시를 몰고 처음 향한 곳은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E마트. 매장 정문 앞에는 이미 택시 20여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택시 4~5대 정도만 여기 서 있었어요. 장보고 나오는 동네손님이라 돈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돌아다녀도 손님이 없으니 여기에 택시들이 몰리는 거죠." 임씨는 15분을 기다려 첫 손님을 태웠다. 장을 보고 나온 40대 아주머니였고, 인근 은평경찰서까지 10분 정도 걸려 3200원이 나왔다.
   이후 임씨는 연신내역과 응암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손님을 찾았다. 40분이 지나도록 택시 잡는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손님이 택시를 잡는 게 아니라 택시가 손님을 잡는 격이 됐죠."
   이날 자정까지 임씨가 태운 손님은 16명, 번 돈은 7만 5200원이었다. 인근 지하철역을 찾는 단거리 손님이 많았고, 1만원 이상 장거리 손님은 1명밖에 없었다.

   오전 0시부터 3시 사이는 장거리 손님이 많아 1시간에 2만원은 넘게 벌 수 있는 시간대다. 이때 바짝 벌어놔야 그날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임씨는 7일 오전 0시와 1시 사이 여의도에서 논현동, 강남역에서 신림동까지 손님 두 명을 태우고 2만 500원을 벌었다. 하지만 오전 1시와 2시 사이에 탄 손님 두 명은 둘 다 봉천동에서 독산동, 독산동에서 신대방역까지 갔던 단거리 손님이었다. 이때 수입은 1만 800원.
   오전 2시를 넘기고는 계속 빈차였다. 예전이었다면 회식을 끝낸 취객 손님을 태웠을 시간대다. 오전 2시 40분쯤 여의도 인근. 50m쯤 앞에서 남자 두 명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1차선으로 달리던 임씨의 택시가 2차선으로 옮길 무렵, 갑자기 뒤에 있던 택시의 '빈차' 등이 켜졌다. 그 택시는 번개처럼 임씨의 차를 추월한 뒤 손님을 태웠다.
   손님을 뺏긴 임씨는 은평구 차고지로 방향을 돌렸다. 빈차로 돌아다녀봤자 기름값만 나가기 때문이었다.
   오전 3시 10분, 평소보다 일찍 운행을 마쳤다. 11시간 10분을 일하고 임씨가 번 돈은 11만 1680원. 총 243㎞를 달려 21명을 태웠다. 반면 나간 돈은 사납금 9만 4000원, LPG 16L(1080원 기준) 1만 7280원, 식비 5000원, 퇴근길에 사 먹은 우유와 빵 1200원, 담배 한 갑 2500원. 모두 합치면 지출액은 11만 9980원, 번 돈보다 많았다.
   임씨는 1992년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때만 해도 택시기사는 돈벌이가 되는 직업이었다. 한 달 수입 200만원은 거뜬히 넘겼다. 그러다 IMF를 거치면서 수입이 130만~150만원대로 줄더니, 요 몇 년 새 한 달 수입이 100만원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현재 서울시내 택시 수는 포화상태다. 1997년 6만 8975대였던 택시는 2006년 7만 2278대로 늘어났다. 반면 1년 택시이용객 수는 97년 12억 3951만 4923명에서 2006년 9억 5059만 8757명으로 줄었다.
   임씨가 지난 6월 회사에서 받은 월급 73만 6621원. 이 급여액은 92년 이후로 거의 오르지 않았다. 사납금을 빼고 남는 하루 수익을 합쳐도 8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    임씨의 식구는 네 명. 부인과 각각 20세, 19세인 두 딸이 있다. 임씨 아내는 하루 12시간씩 식당에서 일을 해 한 달 120만원을 번다. 두 부부의 수입을 합하면 200만원 정도다.
   그러나 수입은 줄어드는데, 고(高)물가로 인한 생활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다. 한 달 지출내용은 집세 20만원, 식비와 공과금 등 생활비 80만원, 네 식구 휴대폰비 20만원 정도, 큰딸 용돈 10만원, 작은딸 용돈 30만원, 두 부부 용돈으로 각각 20만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신문구독비와 초고속인터넷비 합쳐 5만원, 작은딸 학비 이자 3만원도 있다. 매달 10만~20만원은 적자다.
   지금 작은딸은 2년제 전문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 학기 등록금은 430만원, 그나마 학자금 대출을 받아 겨우 대학에 보냈다. 큰딸의 경우에는 당시 학자금 대출제도를 몰라 대학에도 보내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전체 가구 가운데 적자 가구는 전년 대비 4%포인트 증가한 31.8%였다. 10가구 중 3가구 이상이 '적자(赤字) 가계부'라는 뜻이다. 가구당 빚은 3840만원에 달해 IMF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작년과 올해 1분기 근로자 가정의 지출(총 5600가구 표본조사)을 살펴보면 소득 증가분이 소비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월평균 소득은 376만원에서 398만으로 22만원 늘었지만, 총지출은 293만원에서 320만으로 27만원이 뛰었다. 특히 하위 20%는 월평균 44만4000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진 것 없는 서민일수록 그 삶이 더욱 힘들고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차고지에 도착한 임씨는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며 하늘만 쳐다봤다. 별로 뾰족한 생계 대책이 없는 그는 내일도 또 '적자 인생'의 택시를 몰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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