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 / 고석종
늦은 오후 봉고차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간
머리 희끗한 한 남자,
긴 목에 허기가 올가미처럼 묶여 있다.
납작 엎드린 채,
가마우지 물갈퀴 같은 고무장화를 허리에 차고
붐비는 발길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는다.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찍힌 바코드 무늬,
한 생이 선명하게 현상되어 나온다.
처음부터 직거래할 생각인 듯
힐끗힐끗, 만만한 상대를 고르고 있다.
자크처럼 채워진 입, 외상은 절대 사절이다.
그의 앞에서 머뭇거리는 동정심은 여지없이,
녹슨 깡통이 낚아챈다. 그럴 때마다
긴 목에 찍혀 있는 세월의 바코드가 보인다.
가난도 나이를 먹는가,
도망치듯 비켜서는 발길에도 여유롭게
거룩한 찬송가를 덤으로 얹혀준다.
잔등에 무수히 쏟아지는 눈살마저
허물어버린 담담한 얼굴,
직립의 꿈조차 묻어버린, 그는 안다.
입 속에 있는 것까지 게워내야 한다는 것을,
먹이를 삼키는 매순간
긴 목을 훑어내는 검은 손,
그는 두려움에 떤다.
팔과 다리는 세상과의 소통을 잃어버리고
허기만이 그를 받들고 있을 뿐이다.
서슬 퍼렇게 빛나는 그의 뾰쪽한 갈쿠리 손,
어둠이 내리자 봉고차가 수거해 간다.
―《현대시》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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