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제일 좋은 아내
세련되고 마음씨 좋은 시어머니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상견례 때 사돈끼리 만나면 딸 하나 얻었다고 생각한다는 둥,사위도 자식이라는 둥 주거니 받거니 접대 멘트로 과장된 아부를 떤다. 그런데 시댁 호적에 올라 잉크도 마르기 전에 딸(?) 같은 며느리를 속상하게 하는 결정적인 때가 바로 명절.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위는 사위일 뿐이고,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추석이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환한 달밤에 솔이파리 더덕더덕 묻은 향긋한 송편을 먹어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다 남의 추석이다. 적어도 며느리에게는 그런 한가위는 없다. 시댁에서 차례상 마련과 손님 접대 등 과도한 가사 노동은 참기 힘든 스트레스이고 무척이나 버겁고 피해가기 힘든 고통이며, 한마디로 부엌데기이다.
게다가 며느리나 아들이나 똑같이 직장에 나가 돈 버는 판에 아들 얼굴이 '왜 이렇게 야위었냐'고 대놓고 따지는 시어머니가 참으로 야속하기 그지 없다. 어처구니 없지만 착한 며느리인 척하면서 그 옛날 어릴 적 먼저 손댔다가 혼났던 바로 그 음식들을 만들고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고 나서,앞치마 벗어 젖히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다들 딸내미 오기만을 기다리는 친정으로 마악 가려는 찰나에 '벌써 가냐고,시누이 기다렸다가 보고 가라'는 시어머니 말씀에 서운하고 속이 상해 울고 싶어진다.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어서 친정 가라'고 하면 좀 좋으련만 그런 일은 없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은 묵은 갈등을 들춰내고 비수 같은 말을 덕담처럼 건넨다. 시댁에서 제일 많이 부딪치지만 꼼짝 않는 손윗동서,놀고 먹는 시누이,며느리 배려는 눈 씻고 보려고 해야 볼 수 없는 시어머니,어디 쉬운 게 하나도 없고 얄밉기만 한 사람들이다.
부부간 마찰 원인은 양가에 머무는 시간 배분이 문제인데,명절 내내 시댁에서 댕글댕글 굴러다니면서 개념없이 노는 남편에게,아내가 슬쩍슬쩍 눈짓을 하는데 못 알아듣는 척하면,단계를 업그레이드시켜 다른 데 보면서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어 사인을 보내지만,남편은 남편대로 차마 처가에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미 토라진 아내를 보면 후환이 두렵고 남편의 명절증후군도 만만치 않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온 몸이 찌뿌드드한 것이 쑤시고 난리도 아니다. 이럴 땐 참지 말고 남편에게 퍼대면 좀 뚫리면서 나아진다. 그러나 남편도 참고 봐주다 어느 순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욱하면 백발백중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지난해 통계에 설날과 추석이 들어 있는 달,다음 달에 이혼 신청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게 우연은 아니다. 명절 때 처가나 본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다툼이 부부 갈등을 증폭시켜 그동안 쌓인 문제들까지 한꺼번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약은 뭘까? 바로 남편의 '고생 많았어, 힘들지?'라는 사탕발림 칭찬일 것이다. 시집간 여자한테는 엄마 손보다 남편 손이 더 약손이다. 남편이 살살 주물러 주거나 젖은 손을 애처로운 눈빛을 하면서 쓰다듬어 주기만 해도 1등 남편이다. 시작은 손에서 했지만 덤으로 팔뚝도 하고 내친 김에 한 꺼풀씩 벗겨가며 병원놀이를 하거나,따뜻한 무릎에 눕혀 놓고 며칠 새 부쩍 늘어난 새치라도 뽑아주면서 국산 깨를 볶아댄다면 아내의 눈물은 눈가 주름을 타고 귓속으로 들어가겠지? 며칠 있으면 아내는 시댁에 또 가자고 보챌 것이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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