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얼음의 죽음

by 광적 2018. 7. 15.

얼음의 죽음/마경덕

 

 

 

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
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에 고등어 눈동자도 함께 풀린다

얼음은 얼음끼리 뭉쳐야 사는 법
얼음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는 시간,
한 몸으로 둘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하다

서서히 조직이 와해되고 체념이 늘어난다
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사체들
달려드는 파리떼에 모기향이 향불처럼 타오르고
노점상은 파리채를 휘두른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물을 끼얹는다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윗세오름 까마귀/김영옥  (0) 2018.10.17
팽나무가 쓰러지셨다/이재무  (0) 2018.08.04
자본주의 시 모음  (0) 2017.01.02
폐타이어  (0) 2016.09.23
리필/이상국  (0) 201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