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깃발/박건호
깃발이 바람을 만나면
춤을 추었고
깃발이 깃발을 만나면
피가 흘렀다
끝내
어느 한 쪽은 찢어져야
안심할 수 있는
우리의 산하
하늘에는
두 개의 깃발이 있었다
별들이 펼쳐 놓은 이야기는
하나 뿐인데
사람들은 가슴속에 활화산을 숨겨 놓고
천둥소리를 숨겨 놓고
우주질서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념과 사상이
피보다 진했던 우리의 반세기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깃발이 바람을 만나면
춤을 추었고
깃발이 깃발을 만나면
피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