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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비밀 일기장/권예자

by 광적 2025. 3. 23.

비밀 일기장/권예자

 

 

나무는

쉽사리 제 이력을 말하지 않는다

특별한 신분이 되고나서야

개인 등록증이 만들어질 뿐

그들의 이력 뽑아 볼 일 없다

나무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은

거짓 없는 일기를 쓰는 일

바람이 어루만진 감촉

구름이 걸터앉아 들려준 말

꽃들이 내뿜던 향기로운 추파와

달빛이 작곡한 세레나데를 기록한다

폭풍에 맞서던 처절한 기억

딱따구리가 쪼아낸 몸피의 통증도

제 몸 갈피에 촘촘히 새겨 넣는다

숫자를 배우지 않아

이익과 손해를 모르고

걷는 방법도 몰라

늘 제자리에서 늙어간다

누군가 달라고 손을 내밀 때마다

망설임 없이 나누어 주는 큰손을 가졌다

세상과 작별한 후에 비로소 공개되는 

나무들의 비밀일기장

시집 ​『비밀 일기장』2015.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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