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게/김제현
안다
안다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진 네게 쓴 알약만 먹인 일 다 안다
오로지 곧은 뼈 하나로
견디어 왔음을
미안하다,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우고
쑥국새 울음까지 지운 일 미안하다
사랑에 빠져 사상에 빠져
무릎을 꿇게 한 일 미안하다
힘들어하는 네 모습 더는 볼 수가 없구나
너는 본시 자유의 몸이었나니 어디로든 가거라
가다가 더 갈 데가 없거든 하늘로 가거라
우리 시단에서 몸에 관한 시편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조 문단에서는 드문 편입니다. <몸에게>는 실존적 삶의 천착을 통해 인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진 네게 쓴 알약만 먹인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합니다. 또한 '오로지 곧은 뼈 하나로 견디어 온' 몸에게 미안하다고 뒤늦게나마 사과합니다. 그 사과엔 진정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둘째 수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운 일, 쑥국새 울음까지 지운 일'과 더불어 사랑과 사상에 빠져 때로 '무릎 꿇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거듭거듭 말합니다. 이 시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곳은 '한 짐 산을 지운 일'과 함께 '쑥국새 울음까지 지운 일'이라는 대목입니다. 이 비유들은 관주(貫珠)일 뿐만 아니라 의미의 중첩을 통해 깊이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가장 소중히 해야 할 몸에게 '쑥국새 울음을 지운 일'까지 사과하고 있는 시인의 섬세한 감성은 되풀이 읽을수록 감탄을 자아냅니다. 거듭 말하지만 놀라운 형상화입니다. 그렇기에 셋째 수에서 본시 자유의 몸이었기에 어디로든 가도록 권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종내 하늘로 갈 것을 말하는 구절에서 생명의 영원성, 久遠의 길을 암시하고 있음을 봅니다.
죽음은 종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시사합니다. <몸에게>는 그만큼 이채롭습니다. 일생을 두고 단 한 편밖에 쓸 수 없는 탁월한 人生詩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둘째 수 종장이 율격상 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 셋째 수의 다소 풀어진 마무리가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