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유년, 코카콜라 뚜껑 / 현상언
1.
코카콜라 뚜껑이 버려진 잔디밭에
푸르름은 그들의 작업을 봄이라 부르며 땅 깊이 산발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있었다. 그들의 생명 위로 쓰레기가 버려져도 푸르름은 열심히 땅을 일구고 뿌리 내릴 양분을 채웠다. 돋아나는 새순에 풀벌레 스며들면서 푸르름의 목소리는 한 뼘이나 커졌지만 빌딩숲을 이고 있는 숨가쁜 흙에서는 아늑한 숲의 향내가 새나올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푸르름의 어깨 위로 낯설고 고운 아이의 손길이 내려와 버려진 장난감 같은 코카콜라 뚜껑을, 진달래 꽃잎에 미끄러진 햇빛을 줍고 있었다.
겨울의 빨간 귓불에 피가 돌고 있었다.
2.
끊임없이 표정 바꾸는 자화상을 그리며
봄아, 너는 투명한 손이다 아이처럼
흩어진 햇빛 조각을 이파리에 입히는.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時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춤 / 박기섭 (0) | 2008.03.08 |
---|---|
해남에서 온 편지/이지엽 (0) | 2008.03.08 |
빈잔/홍진기 (0) | 2008.03.06 |
봄은/정휘립 (0) | 2008.03.06 |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이정환 (0) | 2008.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