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大靑峰) 수박밭 / 고형렬
청봉이 어디인지. 눈이 펑펑 소청봉에 내리던 이 여름밤
나와 함께 가야 돼. 상상을 알고 있지
저 큰 산이 대청봉이지.
큼직큼직한 꿈 같은 수박
알지. 와선대 비선대 귀면암 뒷 길로
다시 양폭으로, 음산한 천불동
삭정이 뼈처럼 죽어 있던 골짜기 지나서
그렇게 가면 되는 거야. 너는 길을 알고 있어
아무도 찾지 못해서 지난 주엔 모두 바다로 떠났다고 하더군
애인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나 나나 행복했을 것이다.
너는 놀라지 않겠지. 누가 저 산꼭대기에
수박을 가꾸겠어.
그러나 선들거리는 청봉 수박밭에 가면 얼마나 큰 만족 같은 것으로 劫 속에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와서
사는 거야. 별 거겠니 겨울 최고봉의 추위를 느끼면서
걸어 서릿발 친, 대청봉 수박밭을 걸어.
그 붉은 속살을 마실 수 있겠지.
어느 쑥돌 널린 들판에 앉듯, 대청봉
바다 옆에서 모자를 벗으면 가죽구두를 너도 벗어 놓고 시원해서
원시 말이야. 그 싱싱한 생명 말이야
상상력을 건든다.
하늘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로
삼경까진 오겠지 기다리지 못하면 시인과 동고할 수 없겠고
그게 백두산과 닮았다고 하면 그만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맨발로 눈이 새하얗게 덮인, 아니지, 달빛에 비친 흰 이슬을 밟으며
나는 청봉으로 떠난다.
독재로 너의 손목을 잡고
나는 굴복시켜야 돼 너는 사랑할 줄 아니.
한 가마 옥수수를 찌는 여인의 밤
그 밤만 가지고, 너와 나 우리 모두 노래할 수 있는가
가구를 두고 청봉 수박 마시러 나와 간다. 세상은 다 내 책임이였냐는 듯이 가기로 했다.
이 <대청봉 수박밭> 속에 생각이 있다고 털어놓건
비유인지 노래인지, 그것이 표명인지
거짓같지 않은 뜬소문 때문에
나는 언제고 올테니까.
대청봉에서 너와 가슴을 내놓고
여행을 왔노라며, 기막힌 수박인데 하고 뭐라고 할까.
설악산 대청봉 수박밭 !
생각이 떠오르지 않다니
그것이 공산 아니면 얼음처럼 녹고 있는 별빛에 섞여서 바람이 불고, 수박 같은 달이다. 아니다
수박만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면
상상이다 아니다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