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이미지다 / 유승우
신(神)의 체험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보여주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신의 체험은 지식이나 사상이 아니다.
지식이나 사상이라면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나 예술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다.
종교 교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종교적 체험을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이나 시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감동,교감).
시인은 시를 음악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미술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든다.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시인poet이란 만드는 사람maker이란 어원을 지녔다).
사람은 살며 많은 체험을 한다.
그 체험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기억의 창고 속에 저장된다.
이것이 무의식 이다.
시인은 무의식 속에 묻힌 체험을 살려서 이미지로 만든다.
그래서 최재서는 과거의 체험과 현재의 지각이 결합하는 것이 이미지라고 했다.
결국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실 신과의 대화라든지 신의 말씀이란 추상적 관념이다.
자신만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남에게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만든다.
신과의 대화란 정신적 혹은 영적 교감이다. 쉽게 말해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의 느낌은 당사자인 시인에겐 생동하는 감각이다.
이 생동하는 감각을 남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다. 보여줘야 하고 들려줘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를 만든다.
이해시키는 언어는 과학적 언어이고, 느끼게 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이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시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언어의 좋은 표본이 수식(數式)이다.
모든 과학 법칙은 수식으로 요약되고 이해된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은 피타고라스 정리를 거쳐 ah/2란 수식으로
요약된다. 이 명쾌한 요약을 사람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해된 지식은 추상적 관념이다.
사실 숫자보다 추상적인 것은 없다. 숫자는 이미지가 없다.
1 이나 2가 어떻게 생겼는가?!
1 이나 2는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산수책에선 3을 이해시 키기 위해
사과 세 개나 병아리 세 마리를 보여준다.
추상적 관념을 이해하게 되면 과학이나 철학을 지식으로 갖게 된다.
그러면 시를 느낄 수가 없다.
어린이의 마음을 지녀야 시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시심은 동심이다.
시인과 어린이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느낀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 '외인촌'에서)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서정주 '문둥이'에서)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정한모의 '가을에'에서)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김종한 '살구꽃'에서)
-요한복음3장16절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고 있다(유승우 '섣달에 내리는 눈'에서)
위에서 인용한 것들이 감각적 이미지들이다.
감각적 이미지의 이상적 방법은 여러 이미지들이
결합해서 정서를 환기하는 방법이다.
이를 공(共)감각적 이미지라고 한다.
이미지를 만드는 원동력은 상상력이다. 위대한 시인은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또한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다.
남은 못보는 걸 보는 사람이며, 남은 못듣는 걸 듣는 사람이다.
'푸른 종소리'에서처럼 종소리의 빛깔도 보며,
'붉은 울음'에서처럼 울음의 빛깔도 본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시인인 것이다!
*유승우; 현 시립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집 「바람 변주곡」,
시론집 <한글 시론>, <몸의 시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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