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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물고기와의 뜨거운 하룻밤 / 김륭

by 광적 2008. 6. 21.
                               물고기와의 뜨거운 하룻밤 / 김륭

나는 아무래도 눈물 한 토막을 전생에 두고 온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펄쩍, 어항 속을 뛰쳐나와 바닥을 팔딱거리는 금붕어에게 눈이 멀 까닭이 없다 화장을 지우는 당신 입안 깊숙이 나는 아직 거짓말이다 스르륵 바지부터 벗어던지는 혓바닥이 너무 뜨겁다

달의 속곳이라도 훔쳐 입은 듯 달달해진 그림자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바람이 발라낸 가시나무의 살이 건져지는 밤, 당신의 무릎 사이 깨진 어항 하나로 떠오른 나는 아무래도 눈물에 길을 가로막힌 것 같다

내일쯤 눈꺼풀을 잘라내기로 했다 푸드덕 머리를 열고 날아오르는 새들보다 먼저 태양을 필사한 금붕어 배를 갈라야겠다 한 번의 생으론 탕진할 수 없는 눈물의 체온을 식혀야겠다 고백컨대 나는 전생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눈물이란 까마득히 밑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솟구치다 딱, 두 눈을 마주친 물고기의 전생이다 섹스를 할 때마다 둥둥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죽은 연어가 떠오른다 내 몸은 아무래도 영혼을 헛디뎠다

사랑해, 라고 속삭이는 당신의 거짓말로 살기엔
가시가 너무 많다

―<문예중앙> 2008 봄호. 특집 - 2008년 봄, 우리의 시 1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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