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는 날 / 정영상
물을 퍼붓듯이 장마비가 온다
교실 스피커로 대신하는
교장선생님의 종업식 훈화를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은
책가방을 들고 나갈 준비만 한다
상장도 필요 없다
성적표도 필요 없다
방학생활표도 지켜야 할 사항 쪽지도 필요 없다
다달이 성적우수자 성적 우수반 시상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달이 일등부터 꼴찌까지 한 장에 복사된 성적표를 받았는데
조회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금지사항 전달받았는데
그까짓 조금도 부러울 것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우린 꾸중 듣고 벌받고 매맞는 것조차 생활화되지 않았던가
오로지 자율이 필요할 뿐이다
특별청소 구역과 뒤뜰 화단에 잡초 뽑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화장실 청소와 걸레를 빨아 말리는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나무의자에서 벗아나고 싶다
보충수업, 자율학습, 낙인처럼 찍혀 있는
이 로봇 같은 책상과 의자에서 벗어나고 싶다
일 년 열두 달 시험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
교실 뒤 게시란에 크게 써붙인
'사랑과 믿음이 있는 교실' 그 위선을 눈감아 주며
방학이라는 가석방 형식으로나마
잠시 풀려나고 싶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항의를 하며
아이들이 교실문을 나가고
1학기 5개월의 날짜들이
징역 기간처럼 지나가는 자리
교실 열쇠를 쥐고 혼자 남은
나는 간수인가 선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