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감나무 문갑 / 최길하
물 한 모금 자아올려 홍시 등불이 되기까지
까막까치가 그 등불아래 둥지를 틀기까지
그 불빛 엄동 설한에 별이 되어 여물기까지
몇 해째 눈을 못 뜨던 뜰 앞 먹감나무를
아버님이 베시더니 문갑을 짜셨다.
일월도(日月圖) 산수화 화첩을 종이 뜨듯 떠 내셨다.
돌에도 길이 있듯 나무도 잘 열어야
그 속에 산 하나를 온전히 찾을 수 있다.
집 한 채 환히 밝히던 홍시 같은 일월(日月)도.
잘 익은 속을 떠서 문갑 하나 지어 두면
대대로 자손에게 법당 한 칸쯤 된다시며
빛나는 경첩을 골라 풍경 달듯 다셨다.
등불 같은 아버님도 한세월을 건너가면
저렇게 속이 타서 일월도(日月圖)로 속이 타서
머리맡 열두 폭 산수, 문갑으로 놓이 실까.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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