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있는 것들/문학의 갈피

[스크랩] [스크랩] 시 창작에 도움 되는 글 1

by 광적 2008. 8. 4.
시 창작에 도움이 되는 글

 
x = 피해야 할것 0 = 습득해야할것


x 피해야 할것 - 기교주의, 거친 일상적 내용, 짙은 현실주의
(위의 것들은 시의 감동을 줄인다)

x 간접적이고 상징적이고 때로는 비틀어지고 알쏭달쏭한 표현만이 시라는 관념은
세기말적인 거에 불과하다.

x 사상과 실천의 심화과정 없이 주관적으로 머릿속의 간념만으로 씌어지는 것이
문학일 수 없다.

x 갈등의 드라마가 없이 단순성을 면치 못한 점.

x 아마추어 시들이 실패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꾸 설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독자들의 인식 단계를 무시한 채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상징과
비유의 세계를 구축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x '상상력'이라는 부분을 핑계삼아 문맥의 부정확을 방기하는 것은 초보의 단
계에 그쳐야 한다.

o 시를 언어에서 출발하지 말고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부터 출발- 황지우

o 상상에 의한 의미의 학장 조차도 기반은 '사실적 관찰'에서 출발한다.

o 대중성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되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성이란
말로 대중에 영합하거나 병든 미적 관념과 가치관에 편승하지 않아야 한다.

o 상투성의 탈출 - 슬픔을 슬픔으로 노래하지 않는 것.

o 시의 서사의 은닉(이야기의 감축) - 수사적 책략으로 이야기의 결핍을 추구
하는 서사양식. 이야기의 추방(생략, 압축, 절단)과 변환을 수반.

o 시는 생략함으로써 유혹한다 _ 시는 정보의 과소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언술 형식이다.

o '에둘러 가기'를 포기할 때 시는 궁핍이 되고 그 존재의 광휘와 넉넉한
까다로움을 상실한다.

o 시는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좁게는 작품 차원에서, 넓게는 역사의 큰
문맥에서 전체성을 지향하고 완결성을 향해 나아간다.

o 시가 보편을 추구하면 추상에 떨어진다. 추상은 시의 지옥이다. 시가 어떤
보편을 성취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구체성과 특수성의 힘을 통해서다.

o 이미지의 구체성 - 몽롱하지 않음 (시의 한 방법으로서의 '애매성'은 이미지
의 모호한 표현을 말함이 아니고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 가능성을 말함
이다.)

o 시어는 추상어 보다 '구체어' 보편어 보다 '특수어'를 쓴다.

o 시인의 주장은 추상적 구호 없이도 아주 절절히 한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o 시인의 관념보다 구체를 더 지향한다.

o 추상성 - 큰 고민 없이 어떤 '느낌'만으로 시를 채우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
한다. (진정성의 결여)

o 시는 나의 감정의 서술이 아니고 독자의 감정의 획득이다.

o 잘된 시 좋은 시는 그것이 시인 자신의 감동에 머물지 않고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똑 같은 정서적 반응으로 자리하게 된다.

o 시의 질을 따지는 비평적 장치들 - 시적 진술의 평면성 극복 여부, 간접
화법의 정도와 효과, 이미지 배치법, 어사 선택의 연마도, 비유/상징
운용의 기술 수준, 긴장/갈등의 상승적 해소와 종말.

o 시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가지 - 1) 묘사와 비유로 부터 발생하는 이미지
2)서사의 실제적 이야기 3)리듬가 어조에서 태어나는 감정 - 이은봉

o 서정시와 음량은 늘 '아직도 작은 목소리'이다

o 문학이 문학적 진술의 모호성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서
'신비적 사유양식'을 채택하는 일과 '신비주의' 그 자체에 빠져드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
- 역설적 어법을 통한 신비주의
- 은유적 신비주의

x 죽은 관용구를 시적 변형없이 그대로 나열하는 나태.

o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도 그 노래가 이미 불리워진 노래의 변조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문학은 일차적으로 창조적 배반과 전복
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o 작가는 그것의 전범을 왜곡하고 비틀어 새로운 글쓰기의 모형을 만들어 내야
진정한 작가의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o '관습적 사유에 대한 반란으로서의 시'

o 줄광대는 몸무게가 쏠리는 반대쪽으로 부채를 펼친다. - 시인의 부채는?

x 지당한 사유를 반복하는 것이 가져다 주는 지루함.

x '관습적 사유'로 이해 엄청난 감동이 수반되어야 할 것을 감동없이
써내는 것도 문학에서는 유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o 좋은 시인은 그의 내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 대부분 시인들은 자기의 감성적 상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끝내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한다.

o 나의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과 나의 이야기 속에서 보편성을 회득 하는 것
은 구별된다.

o '전형화'의 문제

o 어두운 시대의 시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상징이다. 소수인의 독점물 일지라도
일정한 긴장과 자기 통제 아래 이루어 지는 상상력의 문학은 암울한 시대
상황과 싸우는 유일한 부드러움이다. 무기다.

o '모더니스트'들이 사상적 빈약의 상태에서 육체의 세련미를 추구하느라
모호한 수사학적 유희에 집착해 왔다면 '사실주의 자'들은 언어의 의미망
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과 문학적 상상력의 빈곤에 의한 상투성에
매몰되어 왔다.

o 시의 언어는 생리적으로 체험이나 사물의 구체를 겨냥한다.

o 담고자하는 내용에 압도되어 언어의 힘이 과소 평과되다 보면 일종의
'스토리 텔렝'이 되기 싶다. 짜임새도 있으며 건강한 주제 의식도 살아
있는데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말과 말 사이에 탄력이 붙지 않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이다. - 선취된 관념에 구속됨

o 서정시는 이야기 내용 또는 교설적인 측면을 가능한 한 제한해야 하는
양식이다.

o (경우에 다라서는) 지나친 수사력으로 대상이 가벼워 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은유의 세계를 버리고 되도록 평이한 표현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o 자신이 사용하는 말에 자신의 체중이 실리고 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o 모름지기 시란 그 핵이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에 있는
탓이다.

o 민족문학의 시적 흐름이 성급한 '개념적 진술'로부터 이와 같이 완벽한
' 형상화'쪽으로 기운 것은 대단한 진화라고 불 수 있다.

x 관념의 덩어리를 날것 그대로 내뱉는 조야함의 탈피

o '80년대 민중시의 구조 중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스토리 위주'의 시적
진술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인정 하면서도, 이제는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x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상투적인 산문성.

o 자기가 겪은 체험을 그대로 시로 옮기려는 '익숙한 것'에의 유혹에서
탈피하여 체험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시작의 확보와 함께 시를 읽는
재미와 긴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x 비유와 상징의 상투성 또한 시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잘못된 비유와
상징은 예상치 못했던 '사막의 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o 적절한 의성, 의태어 - 정물화 처럼 되버릴 가능성이 있었던 시를
동적으로 살려 놓기도 한다.

x 주제상의 육중함에 비해 그것을 지탱하는 형상적 풍요가 모자라게
느껴지는 경우.

o 악보가 부여되지 않은 언어는 또 그것 나름의 울림을 갖는다 - 음악성 고려.

o 서정적 주인공의 등장과 감춤.

o 어떤 서정적 주인공을 등장시킬 것인가을 고려.

o 민영의 초기 시 - 말을 아끼며 체험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배치 함으로써
절제되고 압축된 생략적 구도의 행간에 여백의 공간 또는 침묵의 공간이
펼쳐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단시에서 볼 수 있는 호홉의 짧음과
이차원적 구도의 평면성에 의해 어떤 감상주의적 한계가 지적될 수 있다.
(압축된 복합성이 없는 단순성의 경계)

o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서정적 환기를 시킬 것인가

o '시대와의 불화'는 시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이지만, '독자와의 불화'는
시인의 창조적 노력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

o 이즈음 젊은 시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학성와 난해취미 그리고 요설이나
수다스러움이 없어서 좋다.

x 진부한 이미지의 오용

x (-등)의 비유가 작품의 의도를 직접 노출함으로써 시적 암시력을 잃고 말았다.

o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서
이슬처럼 맑은 울림,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소리'여야 한다. 길고 긴 여운을 지닌 소리여야 한다. - 박노해

o 형상과 의미 혹은 상상력과 논리 사이의 끊임없는 존재론적 긴장감

o '도구적 접근'으로 부터 '미학적 접근'으로

x 시가 시적 자아의 삶에 기호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언술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개인적 감상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는 작품.

o 문학이라는게 '상처보여주기'를 그 근본 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o 대칭 또는 역설적인 삶을 받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시 또한 대칭적이거나
역설적이다.

o 습작 시절에는 '무엇을 애기하는가'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o <전형>에 대한 도식의 위혐 : 전형에서의 해방이 곧 인간 해방의 다의성
으로 이어지는데는 훨씬 더 민중적인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 고은의
'만인보'

o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실험' '해체' 따위의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는
형식 파괴의 작업이 얼마만큼 독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라기 보다는, 그 작업이 얼마만큼 작가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혹시
겉멋부림은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o (그리고) 다음엔 그 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삶이 우리의 현실
속의 삶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o '낮설게 하기'라는 문학적 기법은 이상의 이유들로 해서 문학사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이끔
으로서 인간과 세계와의 발전적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o 시인은 참말로 '최초로 생각하고 최초로 보고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x 그것은 막연하게 안개처럼 피어 오르는 시 이전의 어떤 감정일 뿐이다. 다시금
삶의 구체적인 지형도속에서 그 한 단면의 구체적인 드라마와 연결 되어서
이쪽 저쪽으로 뻗어나가는 긴 이야기의 한 단편으로 정확하게 그것은 자리
잡아야 한다.

o 신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쉽게 떠오른 생각이나 글자들을 지워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백지 위를 너무 쉽게 달려간다.

x 삶에 대한 해석이 없다. 모든 것들은 단편적인 풍경이며 시인의 몇몇 나날들이
조합된 꼴라주일 뿐이다.

o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 작품은 필경 삶을 어떤 수준에서 '새롭게 해주는' 품격을
지향해야 하며, 모든 문체와 기법은 이를 위해 은밀히 봉사를 해야 한다.

o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상투형을 파괴'하려고 대담하게 모험하
지 않으면 안된다.

o 시란 말하고싶은 것을 다 말하지 않는 데에서, 즉 '말과 침묵 사이'에서 균형된
어떤 탱탱한 긴장을 받기 때문이다.

o <일상에 대한 탐구>는, 그러나 일상의 표피적 묘사와 도시적 소품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우리 시대의 위기 구조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언제나 동반되야 한다. - 아니다 때로는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시인에 의해서 발견되고 노래될 때도 그 시는 나름의 의미를 갖
는다.

o 시가 의미를 가지는 또 하나의 가치는 그것이 우리의 '반성적 사유'를 자극한
다는 것이다.

o 좋은 시인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표현할 때 조차도 심미적 거리
를 유지하며, 대상이 존재 의의를 보다 명징하게 간파하여 절제된 묘사에
이르도록 한다.

o 시인은 언어의 도취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그 언어의 도취를 깨우기 위해
시를 쓴다. 그래서, 타락한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그 세계를
지탱하는 타락한 언어에 대한 싸움이다. (관념화된 언어와의 싸움)

o 문제는 경험을 어떻게 사실에 부합되게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진실로 그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적 해명이며, 그 경험의 세계를 존재의 밝음
속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다.

o 풍자는 독자의 의식을 충격하며 그 이데올로기적 미망을 깨고 현실에 대한
재 인식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청자(聽者) 중심적인 문학적 계몽주의의 변종
이다.

o (끊임없이 경계에 위치하며 그 경계를 지워 나가는 운동) - 이러한 운동이
그의 시를 '도취적 내면적 담론'에 머물지 않게하며, 그의 시들을 살아있게
한다.

o 모든 시적 언어는 논리적 언어로 요약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시적
언어가 된다.

o 시라는 장르가 초월의 형식이라는 미학적 명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초월은
대지의 삶에 대한 관심과 결코 불리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구조와 지리학
에 대한 관심을 절연한 초월은 소박한 낭만주의 충동을 넘어서지 못한다.

o 시는 부정을 목표로 하는 부정이 아니라, '없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없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힘 또는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건강한 힘'이다.

o (시인의 태도) 부정적 사유의 힘은, 그 쉬지않는 운동의 에너르기와 자기
갱신에 의해서 유지된다.

o 시는 현실의 변화를 예감할 뿐만 아니라 그 변화에 참여하며, 나아가 그 변화
의 의미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문학 형식이다.

o 시에 있어서 미적 구조의 진정한 성취는 시적 언어의 육화(肉化)를 얻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기 시의 경우) 시 언어의 현실감의 증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태도가 '직설적이고 과잉된 수식어를
통해 개진됨'으로써 그 정서적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o 시에서 삶에대한 시인의 태도가 궁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 나
타난 어휘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 언어의 형태적, 통사적 구조를 통해서이다.
'준엄한 정의'를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정서적인 충격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인 것이다.

o 경험 자체는 시가 아니며 종교적, 철학적 통찰 역시 그 자체로는 시가 아니다.
시의 의미의 층위들은 그러한 세계관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만남을 계기로 화학적으로 침전된다. 시인은 흩어진 경험의 조각 가운데 선
택적으로 , 어떤것을 독특하고 중요한 것으로 부각 시킨다. 경험은 정밀하게
관찰되고 현재화 된다. 시는 일상적인 경험의 변역이 아니라, 경험의 의미를
실현하는 움직임이다. 시인은 그 '경험에 하나의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러
한 경험의 진정한 주체가 된다.

o 시의 '어조'는 작품의 외적인 경험 현실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에 부과된 장식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 그 자체
인 것이다.
출처 : 남궁명 시인의 <기억의 고집>
글쓴이 : 체스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