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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것들/기타

公試族

by 광적 2008. 8. 22.

公試에 꿈을 저당 잡히다
9급 공무원이 뭐기에
올해 원서 낸 응시자 16만5000여 명 …‘철밥통’에 대한 추억이 공시족 양산


   주민자치센터에서 민원 서류를 떼 주거나 면사무소에서 농지 관련 단순 업무를 보는 9급 공무원. 국민에게 이들은 소중한 ‘일꾼’이지만 고등학교 때 공부 좀 하면 어렵지 않게 붙었던 9급 시험. 그 9급 공무원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대학 재학생들 사이엔 공시 열풍이 불고, 노량진 공시촌엔 젊은이가 2만 명이나 몰려 있다. 지방대학들은 ‘9급 공시반’을 따로 운영하기까지 한다. 이런 이상 열기를 우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들을 탓할 수 없는 우리 사회와 기업의 충원 구조, 직업 안정성 문제를 9급 공무원의 세계를 통해 들여다봤다.

#8월 14일 오전 7시25분 노량진 입구역. ‘때르릉~때르릉’. 전철이 도착하는 신호가 들리기 무섭게 노량진역(1호선) 출구에선 수많은 청년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공무원 시험(公試·공시) 준비생들이다.

   두툼한 가방을 둘러멘 공시족(族)은 학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연인지, 공무원 학원들은 모두 전철역 건너편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 공시족들은 육교를 건너야 학원에 갈 수 있다. 육교 계단은 자연스럽게 두 개의 ‘일렬종대’가 형성된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왼쪽, 학원 가는 공시족들은 오른쪽으로 말이다. 흥미롭게도 공시족들의 발걸음이 더욱 빠르다. 여유도 많지 않아 보인다. 공짜 신문을 집어드는 사람도 출근자들뿐이다. 아무래도 강의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두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전 11시 노량진 A공시학원 401호실. 9급 공시족들로 꽉 들어차 있다. 족히 400명은 돼 보인다. ‘콩나물 시루’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다. 책상은 대략 60㎝×20㎝ 크기. 덩치가 큰 공시족은 불편한 듯 연방 기지개를 켠다. 그래도 ‘9급 공시’에 합격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강사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이 학원 9급 종합반에는 월 1500명의 공시족이 몰려들고 있다. 다른 노량진 학원들의 종합반도 비슷한 수치다. 이 때문에 노량진 학원가는 하루 종일 공시족들이 붐비고, 합격자 발표철이 되면 이들이 부르는 ‘노량진 블루스’가 때론 슬프게(불합격), 때론 기쁘게(합격) 울려 퍼진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14일 오전, 공시의 메카로 불리는 노량진의 풍경이다. 노량진은 ‘공시촌’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9급 공시족만 해도 대략 2만 명에 달한다.

9급 공시족은 노량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부하거나, 독학하는 공시족을 포함하면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9급 국가직 공무원에 원서를 낸 공시족은 16만4690명이다. 2007년 18만6478명, 2006년 18만7562명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다. 도전하는 사람이 많으면 경쟁률도 치열해지는 법. 9급 공시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올해 9급 국가직 전체 경쟁률은 49 대 1이었다. 일반행정직의 경우, 21명 선발에 4만2042명이 지원해 200 대 1이라는 기록적 경쟁률을 보였다. 9급 지방직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서울시는 1789명의 9급 공무원을 선발했는데, 무려 70배에 달하는 12만8456명이 지원했다.

최근엔 직장인들도 9급 공시족에 합류하고 있는 추세다. 9급 공시에 응시하는 수험생 중 10% 정도는 직장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8월 현재 회원 수 38만 명을 자랑하는 ‘9급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 카페(9꿈사)’는 2004년부터 직장인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9꿈사 주인장 장진걸씨는 “직장인들이 9급 공시에 관심이 많아 직장인 코너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며 “하루 30건 이상의 문의가 들어올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9급 공시족 가운데 고졸 이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과거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합격할 수 있다’던 9급 공시가 어느새 대졸자도 들어가기 힘든 ‘고시’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경북 구미 소재 K대학을 졸업한 이승민(28·가명)씨는 “공시족 10명 중 5명은 대졸이고, 나머지는 대학 재학생 또는 고졸”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장된 말이 아니다. 2001년을 기준으로 국가직 9급 공무원 합격자의 학력이 높아지고 있는 게 이를 입증한다.

2001년 국가직 9급 공무원 합격자 2915명 중 고졸은 2.0%(59명)에 불과했다. 대학 재학 이상 합격자가 90.42%에 달했다. 3년이 지난 2004년 실시된 국가직 9급 공무원의 학력은 더욱 높다. 고졸 출신은 0.4%로 떨어진 반면 대학 재학 이상은 94.27%까지 늘어났다. 10명 가운데 9.4명이 대재 이상이라는 얘기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2005년 이후 학력표기를 하지 않아 구체적인 통계는 내기 어렵다”면서도 “2008년엔 95% 이상은 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9급 공시족에 직장인도 합류

기성세대 시각에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학까지 나와 말단직 공무원에 도전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청년실업문제와 지방대 출신의 취업난 때문에 9급 공시 열풍이 불고 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행정고시, 사법시험 준비생들도 동반 증가해야 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잡코리아’가 올해 4년제 대학 재학생 14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 재학생들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공시는 9급(49.9%)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7급(19.9%), 임용시험(11.6%), 경찰공무원(10.2%)이 따랐고,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은 순위권 밖인 것으로 나타났다.

9급 공시에 고학력 젊은 층이 몰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하급 공무원직의 철밥통이 상위직보다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개방직 임용제가 도입돼 철밥통이 깨지고 있는 고급 공무원직보다 하위직의 정년 보장이 훨씬 낫다는 계산이 고학력 젊은 층을 9급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6~9급 하위직 공무원의 정년 보장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7년 말 국가직 공무원 수는 총 9만6187명. 그 가운데 9급은 1만1187명, 8급은 1만5825명이다. 7급과 6급은 이보다 1.5배가량 많은 2만6864명, 2만3714명이다.

9급에서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공무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9급→6급 진급이 ‘통과의례’에 불과하고 별다른 문제점이 없으면 ‘잘려 나가는 공무원’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테면 신분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 셈이다.

민간기업 사례와 비교해 보면, 하급 공무원직들의 철밥통이 얼마나 단단한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통상 9급→6급 진급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4.6년이다. 민간기업에 입사한 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15.8년)과 비슷하다.

주목할 점은 민간기업 부장의 ‘수’다. 현대차그룹은 전체 직원 12만 명 가운데 부장은 2000~2500명뿐이다. 한화그룹과 LS전선의 전체 직원 대비 부장 비율은 각각 3.0%, 6.0%에 불과하다. C&그룹의 경우 전체 직원 4500명 가운데 70명만 부장직함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부장 수(직책 기준)는 전체 직원 수 1만7444명의 1%(16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9급과 6급이 비슷한 수를 유지하고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과는 너무도 다른 구조다.

민간기업이 속칭 ‘사오정’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하급 공무원직은 신분보장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보면 민간기업엔 무한경쟁 원리가, 하위직 공무원 조직엔 비(非)경쟁원리가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영훈 연세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하급 공무원직에 고학력 취업 준비생이 몰리고 있는 것은 정년보장 등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9급에서 시작하면 대부분 6급까지 진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년(57세)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9급 공시에 고학력 젊은 층이 모여드는 또 다른 이유는 손쉽게 공직에 진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라는 지적도 있다. 시험 과목수는 상대적으로 적고, 선발인원은 5급·7급보다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8년 국가공무원 임용시험계획 공고에 따르면 9급 선발예정 인원은 3357명으로 7급(1172명), 5급(339명)보다 각각 2.8배, 9.9배 많다.

그럼 ‘9급 공시 열풍’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우수한 인력이 공공부문에 진입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9급은 하위직으로서 창조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매뉴얼에 따른 기계적인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수 인재가 9급으로 들어오는 데 반해 기존 인력이 이들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겨 전체적인 생산성을 낮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 부분도 많다는 얘기다.

김 교수의 말처럼 9급 공무원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일반인과 접촉하는 대부분의 실무가 이들의 손에 의해 처리된다.

가령 지방직 9급 공무원이 주민자치센터에 발령됐을 경우 인감·주민등록·호적 발급, 팩스민원 등이 주요 업무다. 지방 면사무소 9급 공무원은 주로 농지건설·재난·민방위·축산 업무를 맡는다. 때론 광고물 철거, 창고정리도 한다.

9급 법원 공무원도 다르지 않다. 9급 법원 사무직렬은 재판보조 또는 서류접수, 호적·공탁·경매·송달 업무를 주로 맡는다. 9급 등기직 공무원도 각종 부동산, 상업등기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다.

9급 노동부 공무원은 실업급여 관련 업무, 부당수급자, 사업장 과태료 부과가 주 업무다. 이를테면 9급 공무원의 역할은 매뉴얼에 따른 반복적 업무지 창조적 역할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졸 출신 지방직 9급 김모(32)씨는 “행사준비, 교육대타, 인원수배 등 잡일이 너무 많다”며 “최소 10년간은 이렇게 해야 하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역시 대졸 출신 지방직 9급 이모(28·여)씨도 “공무원 된 지 2년째 접어들었는데, 단 하루도 9급 공시를 본 것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처음부터 일반 서무를 맡아서 했는데, 언제까지 허드렛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민병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역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9급이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며 “대졸 출신 9급 공무원들이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 사무국장은 이어 “실제 9급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7급을 공부하거나 또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졸 출신 공시족이 9급에 임용됐을 때 낮은 연봉에서 비롯되는 괴리감을 어떻게 해소하고, 활력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의 경우 9급 3호봉으로 91만9600원의 기본급을 받는다. 여기에 급식비 13만원, 교통비 12만원, 직급보조비 10만5000원 등 기본 수당이 붙는다.

명절 휴가비는 설날, 추석에 두 차례 지급되는데 각각 기본급에 16.7%를 곱한 15만3573원이다. 다 합하면 통상 127만4600원을, 해당 달에 명절이 있으면 142만8179원을 받는 셈이다. 이는 4년제 대졸사원의 평균 초임 월급 257만원의 절반 또는 60% 수준이고, 고졸 평균 초임 월급(180만원)보다 적다.

물론 고학력 공시족이 몰려들고 있는 9급 열풍이 조만간 수그러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위직, 하위직을 불문하고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약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9급 공시에 응시하는 수험생도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급 공무원직 철밥통 두터워

실제 서울시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진행할 예정이고, 이명박 정부의 주요 공약도 공무원 감축, 작은 정부다. 2008년 9급 공시에 지원한 수험생의 수가 2006년, 2007년보다 감소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또 경쟁이 치열한 21세기에 ‘공무원 시험 한 번 통과해서 평생 먹고살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공시족 스스로 ‘쉽게 이루고 길게 누릴’ 생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 모순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젊은 층이 공시가 아닌 또 다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창구를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50%를 밑돌고 있는 지방대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방안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최근 지방대졸 구직자 21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8.7%가 ‘지방대 출신이어서 불이익 또는 차별을 받은 적 있다’고 했다. 수도권대와 지방대 간 취업기회에 대한 질문에서도 68.1%가 “공평하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9꿈사’ 장진걸씨는 “9급 공시 열풍이 부는 것에 대해 꿈이 없다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현재 지방대생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공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실력을 빠르게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공시뿐이라는 주장이다.

장씨는 또 “9급 공시에 젊은 층이 몰려드는 게 어쩌면 살벌한 경쟁사회의 단면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태 커리어 대표도 “아직까지 학벌 위주의 사회적 인식이 남아 있어 지방대 구직자들이 상대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방대 구직자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철저하게 능력 위주의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의 채용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