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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형이하학 / 김찬옥

by 광적 2008. 9. 2.

   형이하학 /  김찬옥


  이브의 손끝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의 입이 열린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깊고 깊은 구멍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서서히 점령한다


  발끝을지나정강이를지나무릎을지나허벅지를지나

  깊은골짜기를지나엉덩이를지나배꼽언저리에서멈춘다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뱀은 저 북방의 경계를 침범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랫도리와 더욱 밀접하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어둠에 들 즈음

  다시 체위를 바꿔


  배꼽을지나엉덩이를지나깊은골짜기를지나

  허벅지를지나무릎을지나정강이를지나

  발뒤꿈치를지나발끝을빠져나온다


  작은 상처 하나에도 민감한 뱀이

  온 종일 그녀와 한 몸일 수 있었다


  그녀가 없는 방 한 쪽 구석에

  똬리를 틀고있는 고탄력 팬티스타킹,


  이브의 형이상학을 모르는 저 뱀!    


 계간 『천년의 시작』 2007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