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동거인 / 김경선
낙원 떡집 옥상엔
한 장의 계약서도 없이
바람과 동거하는 사내가 있네
문틈으로 밀린 세금고지서가 빗물처럼 스며들고
슬픔이 찰랑거리며 받쳐놓은 고무다라이를 넘치곤 하네
마지막 남은 오천 원으로 복권을 사들고
어젯밤 폭포수처럼 울던 사내
헛도는 피댓줄 같은 헐거워진 생 앞에
짜거나 질척한 떡 반죽이 되는 사내
희망을 섞어 재 반죽을 시도하네
온몸으로 생을 걸쭉하게 치대며
철썩 처 얼 썩 두들겨 맞네
떡 시루에 사내의 눈물이 콩고물처럼 사이사이가 채워지네
찰진 아픔들이 차곡차곡 떡시루에 앉혀지고
뜨거운 수증기가 안개 같은 눈속임으로
상처들을 켜켜이 쪄내고 있네
조각조각 잘라져 포장되어 가판대에 놓이는 사내
낙원떡집에선 무지개떡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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