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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화전동 담쟁이

by 광적 2009. 4. 15.

 화전동 담쟁이 / 김춘기

 


덕양중학교 가는 길

늙은 버드나무에 둥지 튼 까치 한 쌍

양지마을 내려다본다

 

푸른 하늘을 향해

콘크리트 벼랑에 인해전술을 펴는 담쟁이 사단

어깨를 밀착하고, 함께 기어오른다

흙벽돌 무당집 붉은 깃발이 펄럭이면

바람은 봄볕을 쓸어다 마당귀에 수북이 쌓는다

앉은키를 재는 구멍가게 문틈으로

바람이 노크도 없이 드나든다, 길 건너

늦봄의 그림자만 몇 장 물고 있는 우체통 곁

지팡이가 된 낡은 유모차가 노인 한 분을

모시고 지하셋방으로 간다

정류소 앞 전봇대엔 집 떠난 시간들이

납작납작 붙어있다


어릴 적, 고향의 푸른 달이 밤마다 찾아오는

버드나무 아래

세상의 벽을 타는 남자들이

대폿잔에 달빛을 가득 부어 마신다

술김에 취한 담쟁이도 아슬아슬 벽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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