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 / 안도현
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이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 좋게 키우셨으니
진무른 벌레 먹은 구멍 뚫린 고추 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 농사 잘 안 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감상: 고추밭은 홀로 아들 넷을 키우는 어머니의 가계다. 어머니의 고추밭에서 한 그루 고추나무로 자라는 화자는 못된 짓도 하면서 자랐을 것이다. 점방에 가서 과자를 훔쳐 먹었는지, 약올리고 달아나는 아이의 뒤통수에 돌멩이를 날렸는지는 모르지만 못된 짓을 하고 돌아와도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어른이 되어 봐야 안다고 하신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어린 아들은 이웃 어른들의 기우를 뿌리치고 훌륭한 한 그루 고추나무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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