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거미 / 김충규

by 광적 2010. 5. 12.

            거미 / 김충규

 

발에 흙 묻히며 살고 싶지 않아 허공으로 올라왔지요
허공으로 올라온 나를 땅 기운이 끌어당겨
피가 머리 쪽으로 몰려 거꾸로 매달리곤 하지요
아침마다 허공의 뜰에 고인 이슬로 가랑이를 씻고
무언(無言)의 노래를 세상 밖으로 퍼뜨리지요
내 뼈를 추려내어 지어놓은 집
환하고 눈부셔
지나가는 뼈 없는 곤충들이 스스로 집에 갇히지요
내게는 집이지만 그들에겐 감옥이죠
땅에서 태어난 생명은 땅에서 죽는다지만
내 집에 갇힌 것들은 영영 땅으로 내려가지 못하죠
곤충을 잡아먹을 때마다 내 뼈는 더 부드러워져요
내 뼈가 단단했다면 나는 결코
허공에 올라와 살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부드럽고 낭창낭창 휘어지는 뼈!
나를 허공에 밀어올린 힘이지요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요, 격렬한 / 손진은  (0) 2010.05.12
달팽이집이 있는 골목/고영   (0) 2010.05.12
경계 / 장철문  (0) 2010.05.12
냉장고/이재무   (0) 2010.05.12
화투(花鬪) / 최정례   (0) 201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