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이재무
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
그녀의 울음은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
나는 그녀처럼 헤픈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그녀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 몸 속엔
그렇고 그런 싸구려 내용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녀의 몸엔 아주 익숙한
내음이 배어 있다 그녀가 하루 24시간
노동을 쉰 적은 없다 사시사철
그렁그렁 가래를 끓는 여자
언젠가 그녀가 울음을 그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들처럼 흔한 것도 없으니
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울음에 주목하지 않는다
살진 소파에 앉아 자정 너머의 TV를
노려보던 한 사내가 일어나
븕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그녀에게로 간다
그녀 몸속에 두꺼운 손을 집어넣는다
함부로 이곳저곳을 더듬고 주물러댄다
'푸른 고집' 천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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