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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조개를 굽다/심언주

by 광적 2013. 9. 16.

조개를 굽다/심언주

 

 

화덕 위 맨발로 달려나온

그녀들, 단단한 입술 속에 부드러운 혀를 감춘

그녀들, 레코드판 같은 껍데기마다

파도 소리를 감아놓고

귀에 대면 금방

바다를 보여주던

그녀들의

화려한 캠프파이어,

부리가 뜨거워져 붉은 부리갈매기가 날아오른다

파랗게 질린 간월도 한쪽이 주-우-욱 끌려 올라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기 가장 빈번히 나누는 대화 가운데 이런 토막이 있지 않나 해요. 뭐 먹을래? 하면 아무거나! 하는거. 실은 저마다의 머릿속에 제각각의 메뉴판이 넘어가고 있다는 거 알죠, 알죠, 다 알죠. 특히나 길을 걷다 조개구이라는 간판을 보면 왜 우뚝 서게 되는지. 매일같이 사람이 미워 죽을 맛이고 또 매일같이 사람이 좋아 죽을 맛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들 그렇게들 빈번히 바다 타령들일까요. 불 주위에 둘러앉은 우리들 조개를 주문하고 목장갑을 끼고 뜨겁게 달궈진 불판 위에 하나하나 조개를 얹어나가지요. 차츰 입을 벌려가며 제 속살을 내보이는 건 조개인데 아이참, 이 데이블 저 테이블 어느새 불꽤해진 얼굴들로 벌린 입 못 다무는 여러분들, 대관절 무슨 고백 이리 많아 저리 조개껍데기들 까맣게 태우시나요. 조개에게는 불이 추궁이듯 아무래도 우리에겐즌 소주 한잔이 그런가 봅니다.

   자, 새까맣게 탄 조개 드시지는 마시고요, 허허 참 삽겹살이 아니니 뒤집지도 마시고요. 거기 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새 조개들 얹으세요. 깜깜한 간밤 지나니까 오늘같이 환한 새 아침도 오는 거잖아요. 다행히 북한산 조개들 값도 싸고 맛도 좋네요.

                                                                  

 

중앙일보 시가있는아침/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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