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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수도꼭지의 말/김연성

by 광적 2021. 4. 21.

수도꼭지의 말/김연성

 

 

한밤중 누가 노크한다
어두운 마음에 안부를 전한다
가난이 짓무르도록 흐르고 싶었다
떨어지는 것은 물이 아니라 모진 마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아래로 흐르고 싶었다
좁은 하수관 안으로 쏟아져,
꼬불꼬불 따라가면 푸른 바다가 되리라
검은 심연에 다다르리라

 

위풍 심한 창 밖의 기온은 영하 13도,
반 지하 전세방에 옹기종기 네 식구
서로를 홑이불 삼아 새우잠 자는 동안
수도꼭지 저 혼자 중얼거린다
얼지 마라, 얼지 마라
가난은 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덮어줘야 할 온기와 같은 것이니
마음이 마음을 덮을 수 있다면
허기진 몸뚱어리도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겠느냐

 

어둠도 섣불리 침투하지 못하는
반 지하 전세방 개수대에 붙어 있는
수도꼭지 말한다 곤한 식구들 깰까
밤새 가만가만 속삭인다
가난은 어둠과 같으니 한 잠 자고 나면
다시 환한 때가 오리라 창밖,
결빙의 시간 지나면 서럽도록 밝은 날이 오리라

 

똑,

똑,

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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