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윤의섭
도마는 칼날을 받아냈다
벌써 십 년을 해온 일이다
대부분 죽은 것들이 도마를 거쳐갈 때마다
칼자국이 남았다 시체를 동강내는 칼날 밑에서
도마는 등을 받쳐주었다
도마의 등뼈에 수없이 파인 골짜기
핏기가 스몄다
시체들의 찌끼가 파묻힌 자리에선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났다
도마는 칼날에 잘리는 시체들의 마지막 생의 향기를 안다
생을 마감할 때 잠시 미끄러져 달아나려 했던 두려움을 안다
시체들을 통과한 칼날을 받아내며 살아가는 도마
죽음을 섭생하고는 빽빽하게 영생불사의 날짜를 새겨놓는다
도마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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