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절에 친했던 헤어디자이너 이상일 선생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그분은 요즘 경기 이천에서 ‘라드라비 아트 앤 리조트’란 복합예술문화공간을 운영하며 설치미술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뻔한 안부인사에 이 선생은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답했다.
“행복에 항복하고 있어요!”
예전에도 그는 작은 꽃 한송이에도, 흐렸다 갑자기 갠 파란 하늘에도 ‘어머나, 어쩜 좋아’ ‘근사하다’ ‘황홀하다’ 등을 남발(?)해서 덤덤한 나는 적응이 잘 안되기도 했다. 그런데 67세 할아버지가 돼 프랑스어로 ‘인생은 예술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드라비’란 이름의 공간에서 매순간 느껴지는 행복에 항복하며 희열을 느끼고 산다니 너무 부러웠다.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사람은 늘 행복을 입에 달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행복에 인색하고 심지어 불편해하거나 거부하려 한다.
화사한 꽃을 보면서도 ‘이것도 곧 지겠지’라고 허망해하고, 상을 타도 ‘과연 제게 너무 과분한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겸손해한다.
평소 후회나 반성을 잘하지 않는 내가 나이 들어 가장 후회되는 것은 박사학위를 따지 못한 것이나 압구정 아파트를 사지 않은 것이 아니다. 수시로 내게 찾아왔던 행복감에 너무 둔감하거나 이를 무시했던 습관이다. 또 항상 공기나 햇살처럼 내 주변을 감돌았던 기쁨들을 보지 않고 ‘내일 비가 오면 어쩌나’ ‘계획이 틀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내 시간들을 무채색으로 우중충하게 보낸 것이 자신에게 미안하다.
이 선생과 통화를 마친 후 나도 행복에 기꺼이 항복하기로 했다. 맛있는 커피 한모금에, 갓 구운 빵 냄새에, 친구의 안부전화에, 책에서 발견한 탄탄한 문장에 행복을 느끼며 와락 껴안아주려고 한다.
행복에 저항하는 것이 성숙하고 진지한 사람이란 편견도 버려야겠다. 과자나 사탕 하나에도 까르르거리며 천사의 미소를 짓는 아가들처럼 일상에서 행복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훈련도 해야겠다.
얼마 전 딸이 준 작은 선물을 내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가슴에 품었다. 딸이 “이게 뭐라고 그렇게 좋아해?”라고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나 이제 행복에 항복하며 살 거야. 나를 버리거나 무릎 꿇는 항복이 아니라 두팔 벌려 껴안아 나와 하나가 되는 항복 말야.”
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행복은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강하다. 누군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곁에 있는 이들도 맛있게 느끼고, ‘참 좋다!’란 감탄사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니 내가 행복에 항복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수용이지만 다른 이들을 위한 이타적인 일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서 불행과 두려움에 무너져 곁에 있는 사람들조차 우울하게 만드는 이들보다 조금은 들떠 보여도 쉽게 행복해하는 이들과 친해지고 싶다.
항복 선언을 한 후 나는 행복에 민감해졌다. 나이 들어 감각이 둔해지지만 행복 감수성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기꺼이 항복해서 행복의 포로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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