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구멍 다 막아라’ ‘생각도 격리’ … 코로나 3년, 詩가 되다
■ 셧다운·백신·증상·죽음… 시인들이 바라본 ‘팬데믹’
‘벌에 쏘인 듯 후끈거리는…’
문정희, ‘벌집’서 백신 묘사
‘허파도 심장도 생각도…’
김기택, 全감각의 격리 고백
‘한 숨이, 한 숨에게 전염…’
이설야, 공포가 된 생활 개탄
‘긴 겨울’을 지나왔다. 셧다운, 죽음, 격리, 차단과 같은 차가운 말들이 일상이던 세계. 팬데믹은 절망의 깊이만큼 선명하게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 전대미문의 비극을 “시작(詩作)하기엔 더할 나위 없었던 ‘모순’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어느 때보다 압축적인 ‘시 쓰기’의 삶을 살았을 터. 시인들이 기억하는 지난 3년이 궁금해졌다. 시 속에 각인된 코로나는 어떤 모양일까. 엔데믹을 맞은 지금, 코로나 시대의 시들을 살펴본다. 아득해진 고통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고 단절된 채 자연을 갈망하던 마음도 떠오른다. 그렇게 절망과 희망,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 속을 떠돌다 보면, 어느새 정말 코로나와 작별할 시간이 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절망, 공포, 슬픔…‘인간’에게서 왔지 = ‘코로나19’를 관통하는 감각은 공포와 아픔, 슬픔, 절망이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는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쓰인 ‘코로나 시’ 다섯 편을 ‘봉쇄’라는 주제로 묶어 선보였다. 사실 이 시집은 주로 김 시인이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을 경험하며 써내려간 시로 채워졌는데, 코로나19의 이미지 역시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고통과 절망이기에,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슬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하얀 마스크를 ‘백조’에 비유한 시 ‘셧다운’이 주목받았다. 화자는 “외출을 할 땐 얼굴의 구멍을 다 막아라/ 새 칙령이 공표된 지 2년이 지났다/ 얼굴도 이제 벌거벗을 수 없다”면서 인류가 마주한 위기와 불안감을 ‘다급한’ 목소리로 전한다.
“조류 독감에 쫓기다, 결국 코로나19에 쫓기며/퀵 배달로 시킨/죽은 살코기를 먹는 봄날”
문정희 시인의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사)에 실린 ‘벌집’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조류 독감’과 ‘코로나19’를 나란히 두고 시상을 전개하는데, 결국 감염병이 바꿔놓은 일상은 사람이 자초한 일이라는 통찰이다. 이어, 화자는 “꿀 대신 독을 만드는 대단지 구멍”에 갇혀 “벌에 쏘인 듯 후끈거리는” 백신을 맞고 있다며 인류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김기택 시인은 몸뿐 아니라 모든 감각이 ‘격리’되는 걸 자각한다. 김 시인은 ‘낫이라는 칼’(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자가 격리’에서 “말과 손과 숨을 둘 마땅한 곳이 없어서” “허파도 심장도 생각도 따라서 자가 격리되었다”며 비탄에 빠지는 화자를 등장시킨다. 이설야 시인은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창비)에 실린 ‘증상들’에서 공기 중으로 감염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한 숨’으로 표현했다. 이 시인은 한숨마저도 질병의 매개가 되는 비정한 현실을 “한숨이 떠다닌다” “한 숨이, 한 숨에게 전염된다”고 묘사한다. 어느새 건조해져 버린 코로나의 파생어들. 시인이 감각한 세계 속에서, ‘그 때 그 절망’을 반추하게 된다.
◇자연은 허둥대지 않지…나무가 되어보았던 팬데믹의 시간 = 코로나19는 자연과 대립각을 세운 인간의 탓. 팬데믹의 시간은 자연으로 회귀를 이끌었다. 자연과의 교감이나 이를 통한 치유 등이 시 속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단절된 채 보내야 했던 시간은, 더욱 자연을 갈망하게 하고 인간사와 자연사를 비교하게 했다. 대표적인 시가 김용택 시인의 ‘모두가 첫날처럼’(문학동네)에 실린 산문시 ‘우리들의 꽃밭’. “인류의 새 교정자로 등장했다는 바이러스에/눈부신 인류의 문명이 이렇게 얼굴 가리고 허둥대다니/(…)/결국 나는 무섭고 설 자리 없는 결과에 절망합니다/바람 부는 나무에게 내 마음을 주어버리기도 합니다” 재난을 만나 허둥대는 우리의 모습이 굳건한 나무에 대비된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서 코로나는 우리가 잊었고 잃어버렸던 감각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김종해 시인의 최근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문학세계사)에 실린 ‘봄날 저녁’에서 화자는 “생으로 졸인 봄멸치 한 숟갈/상추쌈에 밥과 쌈된장/입안에 쏟아 넣자마자 울컥/눈물이”라고 노래한다. 그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봄 입맛”은 “꿀보다” 더 달았다고 감탄한다. “봄날에 대하여 나는 또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이어지는 시는 ‘산다는 것’, 그리고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코로나가 앗아간 것들이 돌아오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떠난 이를 기리고, 멀어진 사람을 그리다 = 한국 시단을 이끌어 나갈 두 젊은 시인의 시도 눈길을 끈다. 첫 시집 ‘캣콜링’으로 주목받고, 2030 독자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소호 시인은 지난 4월 발표한 시집 ‘홈 스위트 홈’(문학과지성사)에서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기린다. 시인의 할머니는 “코로나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고” “난 오늘 죽어도 괜찮다”며 외출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이틀 만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준비도 예상도 없이, 공기처럼 가볍고, 가까운 죽음을 목격한 이 시인은 할머니가 화자가 된 ‘어느 고독한 게이트볼 선수의 일대기’에서 화자가 내뱉는 말 속에 ‘콜록’을 의식적으로 삽입, 비극의 일상성을 도드라지게 했다. “콜록 그런데 자꾸 기침이 콜록 멈추질 않아 콜록 콜록콜록 안녕 이제야 인사를 건네 나는 이순정이야 34년생 올해로 게이트볼 운동장의 모래 한 줌이 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입매가 사라지니 눈매가 매서워졌다/표정을 알 수 없어서/서로가 서로를 경계했다”
모든 시 제목이 대명사로만 이뤄진 실험적 형태의 시집 ‘없음의 대명사’(문학과지성사)에서 오은 시인은 타인이 타인이라는 이유로 위협이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것’이라 명명된 여러 시편 중 하나에서 시인은 “거리를 걷다 옷깃이 스칠 때/불꽃이 일거나 냉기가 돌았다”며 감염병에 예민해진 몸짓들을 포착한다. 타인이, 지옥이, 불꽃이, 냉기가 된다. 시절로만 남지 않을,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다.
◇가장 시급한 백신 ‘사랑’ = 벌에 쏘인 듯했으며 꿀 아닌 독이었던 백신(문정희 ‘벌집’)이 아니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백신이 무엇인지 일러주는 시도 있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에 실린 시 ‘가장 오래된 백신’에서 송경동 시인은 국가봉쇄령이 내려진 “정지된 세상”에서 열다섯 살 소녀가 재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이겨내는 장면을 그리며 우리를 끝내 살리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역설한다.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만이, 우리를 “경이로운 삶의 여정”으로 이끈다고 말이다.
박세희·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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