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몸통은 땅속에 있고
꼬리만 바람에 살랑거린다
예쁜 강아지야
네 반가운 주인은
땅속에 있구나
발견하는 눈
고영민
시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대상을 유심히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심히 보는 것은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전제조건이다. 창조의 본질은 관찰하는, 발견하는 눈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발견의 진정한 마법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서는 데 있지 않다.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고 말한다.
가끔 시 창작 강의를 하게 될 경우 청강생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 하나가 있다. 다섯 모둠 정도로 그룹을 지은 후 미션을 제시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당신에게 등기우편물이 배달되었습니다. 우편물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수취인이 도장을 찍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도장을 찍으려는데 인주가 없습니다. 인주를 대신할만한 것을 5분 동안 최대한 써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많이 쓴 모둠에게는 작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시작 신호와 함께 각 모둠은 시끌벅적해진다. 점점 소리가 잦아들고 주어진 5분의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게임을 마치고 각 모둠별로 몇 개 적었는지를 물어본다. 대략 10~20개 정도이다. 이어, 모둠별 조장에게 적은 순서대로 5개의 대체물을 불러보라고 한다.
물감, 립스틱, 김칫국물, 피, 봉숭아꽃, 흙…. 순서만 조금 다를 뿐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그 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나온 5가지를 불러보라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들이 터져 나온다.
이 게임에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처음의 5가지는 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한 것을 남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뻔한 시가 된다는 말이다. 결국 시가 되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가장 밑의 것을 끄집어 낼 때 가능하다. 관찰의 핵심은 새로운 시각을 통해 가장 밑의 것을 끄집어 내 상투성을 벗는 것이다. 이는 디카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상투성을 벗어난 새로운 의미부여를 통해 좋은 디카시는 탄생한다.
두 번째는 대상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우선적이며, 중요한 것은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기둥만 세우면 집의 반은 지은 것과 같다. 기둥만 세우면 비닐만 올려도 집이 되고, 양철만 올려도 집이 되고, 짚을 얹혀 놓아도 집이 된다. 시에서 기둥은 줄거리이다. 한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 의미를 확장시켜 줄거리를 만들면 시는 대강 꼴을 갖추게 된다. 기둥을 세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연상’이다. 연상은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말한다. 연상은 항상 어떤 줄거리를 숨기고 있다. 시의 줄거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며, 시인은 단지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뿐이다. 이처럼 줄거리를 찾는 것 역시 대상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처음 세상을 바라보듯 호기심을 갖고 주의 깊게 대상을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충 보면 시 창작 강의의 게임에서와 같이 남들도 다 보고 생각한 5가지 정도 밖에 볼 수가 없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관건이다.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친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적 인식’이다. 흔히 시인詩人을 시인視人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상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다. 이처럼 새로운 인식을 통해 창작의 동기로 삼은 작품들은 낯익고 친숙한 것들과 이별하고 남들이 보지 못한 것으로 새롭게 탄생된다. 창작에 영감을 주는 최초의 이미지를 발견한 생생한 순간과 그 특별한 발견을 실행으로 옮겨 창의적 행위로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탄생되는 것이다.
고영민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으로 『봄의 정치』. 박재삼문학상 외 수상.
[출처] 제33호 디카시, 나는 이렇게 쓴다/김상미 고영민|작성자 dpoem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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