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 이정환
한밤중 한 시간에 한두 번쯤은 족히 찢어질 듯
가구가 운다, 나무가 문득 운다
그 골짝 찬바람 소리 그리운 것이다
곧게 뿌리내려 물 길어 올리던 날의
무성한 잎들과 쉼 없이 우짖던 새 떼
밤마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일순 뼈를 쪼갤 듯 고요를 찢으며
명치 끝에 박혀 긴 신음 토하는 나무
그 골짝 잊혀진 물소리 듣고 있는 것이다
감상)
이정환 시인은 2002년도 "원에 관하여"로 중앙일보 시조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어릴 적 늘 매만지고 함께 뒹굴던 토속적인 생활용품으로만 시조집을 일궈내신 그 창작열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호미" "삽" "괭이" "쟁기" "코뚜레" "떡살" "절구통" "은장도" "부채" "인두" "골무" "버선" 등, 80여점의 그 생활 속 물품들을
어찌 다 시로 승화할 수 있었는지...
이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란 작품도 몇 번을 읽고 또 읽게 만든 작품입니다.
시인은 어느 날 오랫동안 함께 해온 집 안의 낡은 가구가 비틀려 있는 것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곧 그 비틀리는 소리를 "일순 뼈를 쪼갤 듯 고요를 찢으며" "명치 끝에 박혀 긴 신음 토하는 나무"라는 시적 상상을 합니다.
"가구"는 즉 시인 자신으로 화하면서 "곧게 뿌리내려 물 길어 올리던 날"로 달려갑니다. 저는 그 곳이 고향일 수도 있고, 심적 깊은 내면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구"(즉, 시인)로 살아오면서 늘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 밤중 한 시간에 한두 번은 족히" "찢어질 듯" 되새기고 되새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어 안락한 방안 따뜻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 나무로 살던 저 들판의
바람과 빗소리, 새 소리에 대한 본원적인 그리움에 몸을 뒤트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 내면의 "그 골짝 잊혀진 물소리"를 함께 들어보고자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가구" 하나를 놓고도 그 보이지 않는 전생의 "찬바람 소리"를 그리워할 줄 알고 "명치 끝에 박혀 긴 신음을 토"할 줄도 아는 시인 부단히 "신음을 토하며" 본래의 그 참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인의 환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작품입니다.
"눈"이 온 세상을 환하게 덮은 그런 눈밭의 본래 풍경이 아름답듯 시조에서도 이처럼 환한 본래의 심성을 보게 만드는 것 또한 시인의 몫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