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 빗발 / 장석주
빗발, 빗발들이 걸어온다. 자욱하게 공중를 점령하고 도무지 부르튼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얼마나 먼 데서 예까지 걸어오는 걸까... 천 길 허공에 제 키를 재어가며 성대제거 수술 받은 개들처럼 일제히 운다... 자폐증 누이의 꿈길을 적시며 비가 걸어온다... 봐라, 발도 없는 게 발뒤꿈치를 들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 과수원 인부의 남루를 적시고 마당 한 귀퉁이의 모과나무를 적신다... 묵은 김치로 전을 붙이고 있는 물병자리 남자의 응고된 마음마저 무장해제 시키며 마침내는 울리고 간다... 저 공중으로 몰려가는 빗발, 저 쬐그만 빗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