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風葬)1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나먼 옛집/정병근 (0) | 2008.05.19 |
---|---|
목련꽃을 보면 양변기가 생각 난다/김봉식 (0) | 2008.05.19 |
대설주의보/최승호 (0) | 2008.05.17 |
살다가 보면/이근배 (0) | 2008.05.17 |
벼/이성부 (0) | 2008.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