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을 보면 양변기가 생각 난다 / 김봉식
목련나무들이 자위를 했다
돌돌 뭉쳐진 크리넥스 티슈가 발에 밟힌다.
발정난 저 놈들, 밤새도록 방문 걸어 놓고
가려운 제 성기를 벅벅 긁었나 보다
달큰한 향내가 아파트 단지에 그득하다
성기가 몸보다 먼저 자라는 것들은
사춘기의 격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저 변성기의 목련나무들은 낄낄대며,
미끈한 두 다리 쭉 뻗고 잠든 분홍철쭉의
흐트러진 춘화를
밤새도록 돌려보았을 것이다
쓰다버린 크리넥스 티슈가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걸려있다
문득, 오래된 서랍 속에 감춰 둔 내 사춘기가 그리워진다
첫사랑의 그 여자가 떠오른다
사랑을 잃고 휴지처럼 구겨져 떠돌던
청량리가 떠오른다
4월의 목련꽃을 주워다가
양변기에 넣고 물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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