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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지퍼/김춘기

by 광적 2008. 7. 9.

           지퍼/김춘기

 

싱크대의 그릇이 서로 몸싸움중이다

휴일 설거지 하는

아내의 전용지퍼 아침부터 개봉이다

분당 미정이 70평 아파트라는데

18평 연립, 여기서 늙을 거야

내 귀에 미풍이 스친다

강남 제부 최신형 벤츠 알지

우리 집 마이너스카드

재수 삼수도대체 몇 수생이야

순간 나는

로댕의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대치동 조카들 해외유학 중이라는데

이젠 외딸 수빈이 과외 내가 직접 할까?

당신 어머니께 몰래 용돈 드렸지

나는 열리려는 지퍼를 끝까지 붙든다

그녀의 눈이 총알이 되어

내 얼굴에 연속 박힌다.

붉은 입술도 혀도 죄다 날아와

온몸에 끈적끈적 달라붙는다

당신 어제 밤일은 또 그 모양이야?

결정타, 거실 바닥에 쓰러진 나

그래도 지퍼를 끝까지 열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지 않는 저 붉은 혓바닥

매일 색깔이 바뀌는 미끌미끌한 지퍼

입이 세 개쯤 되는 그녀의 연발소총이

무수히 격발되는 거실

십년쯤은 된 군자란이

곁눈질하며, 붉은 혀를 쑥 밀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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