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 유종인
주변에 모과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가 건너다 보이는 묵정밭 고랑
썩은 고양이 해골만한 모과가 놓여있다
지난 해 일이다 지난 해 일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
새봄에도 지난 해 일로 골똘해 있는 작은 해골이
모의 수류탄처럼 던져져 있다 역시 지난 해 일이다
터지지 않는 일도 있다 먹히지 않는 일도 있다
저 혼자 죽어서 제 몸의 향기로 부음을 내고
저 혼자 눈비의 문상을 받고 저 혼자 나뒹구는
저 과부 과실의 미라는
손발이 없는 지난 해가 매만졌다 고스란히
고스란히 죽어 있다 참 잘 죽었다 제가 죽었는지도 모를 골통의
숨만 고스란히 빼간 골동(骨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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