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태풍이 온다
온실 효과로 지구가 더워지고 해수면이 오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지구 평균 기온이 100년 간 몇 도 더워지고 해수면이 몇 십 ㎝ 높아진다는 것을 실감하기는 어렵다.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거대한 태풍이 불어 온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한국을 찾았던 태풍보다 위력이 수십배나 되는 태풍, 건물을 무너뜨릴 정도의 바람, 항구를 덮을 정도의 폭풍 해일, 하루에 1000mm가 넘는 비를 뿌리는 태풍이 온다면 어떻까.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수많은 기상 이변의 하나로 전례 없는 슈퍼 태풍의 등장을 예상한다.
태풍이 지구 온난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발생 과정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태풍은 적도 지역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생겨난 수증기 덩어리가 지구의 자전 영향을 받아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높은 위도로 올라가는 현상이다. 고위도 쪽으로 올라가면서 수증기를 더 흡수해 세력이 커지다가 많은 비를 내린 뒤 소멸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바닷물 온도가 높을수록 점점 더 강한 태풍이나 허리케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슈퍼 태풍이 늘어날 것을 명확히 경고하지는 않았다. 다만 1970년 이후 북대서양 지역에서 강한 열대폭풍 활동이 증가했으며 이는 열대 해수면 온도의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또 미래에는 태풍과 허리케인이 열대 해수면 온도의 지속적인 상승과 함께 최대풍속이 더욱 강해지고 호우도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실제 지구 온난화와 태풍 발생 빈도, 강도의 상관관계는 학자들 사이의 논쟁 거리다. 많은 학자들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입증할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2005년 미국을 강타한 카트리나처럼 맹렬한 태풍이나 허리케인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미국에는 카트리나 같은 5급 허리케인이 역대 최고인 무려 4개나 발생해 큰 피해를 줬다.
초특급 태풍의 증가를 보여주는 다른 예도 있다.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등의 발생 지역을 전세계적으로 세분하면 9곳이 된다.
각 지역별로 중심 기압, 크기 등에서 역대 가장 강한 것이 언제 발생했는지를 살펴보면 서태평양(한국, 일본 등에 영향) 지역은 1979년 괌과 일본 남부를 강타한 태풍 ‘팁(tip)’으로 나온다. 나머지 8곳의 최고 기록은 모두 1997년 이후에 관측됐다. 그 중 6개 지역은 2000년 이후에 역대 최악의 태풍 기록을 갈아 치웠다. 점점 더 강한 태풍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기상청의 분류에는 슈퍼 태풍이 없다. 기상청은 지표에서 측정한 최대 중심 풍속을 기준으로 약한 태풍(초속 17~25미터), 중간 태풍(초속 25~33 미터), 강한 태풍(초속 33~44미터), 매우 강한 태풍(초속 44미터 이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은 태풍과 허리케인에 대해 등급 부여가 다르다. 하와이에 있는 미군 통합 태풍경보센터는 대략 초속 67미터 이상을 슈퍼 태풍으로 분류한다. 허리케인의 경우에는 초속 70미터 이상을 5급(Category 5)으로 분류한다.
국내에서도 수십 년 내에 카트리나(5급, 육지 상륙 때 4급으로 약화) 급 이상의 강력한 태풍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점점 늘고 있다.
2006년 11월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연구팀이 카트리나 수준의 태풍이 한국을 덮질 경우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모의실험)했다. 실험결과는 가공할 만했다. 초속 60m의 바람과 하루 1000mm의 호우를 가정한 결과 부산에는 집채만한 해일이 덮치고 연안에서는 대형 유조선이 뒤집힐 수준의 파도가 일었다. 트럭이 바람에 뒤집히는 것은 물론이고 지름 1m가 넘는 아름드리 나무들도 뿌리째 뽑혀 나갔다. 웬만한 소규모 건축물은 대책 없이 무너졌다. 서울은 호우로 인해 여의도가 물에 잠겼고 소양강 댐도 불어난 물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다.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