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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명견대회

by 광적 2009. 3. 11.

 명견대회/ 김춘기


 1.

아침에 잠깬 참새, 소금항아리 밑에 남아있는 어둠을 발톱에 묻히고

텃밭으로 날아가 참깨 이파리를 쫀다.

참나무가 짙푸른 햇살을 샛강에 풀어 산의 아랫배부터 여름 수채화를 그린다. 쓰르라미 참매미가 목청을 한 옥타브 올리는 일요일, 한낮이 천천히 풀린다. 영천사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는 내 곁의 어머니. 풍경소리까지 담아 왔다며, 참나리 같은 웃음꽃을 피우신다. 두레상에 식구들이 모여 앉는다. 아버지가 참가자미 찜에 참비름나물도 얹어 어머니 입에 넣어드린다. 나는 부모님께 참이슬을 한잔씩 드린다. 입맛이 참하게 살아난다.

참쑥 참꽃 참대 참느릅나무가 모여 사는 평강식물원, 가족여행 길에 수협 어판장에 들렀다. 참게 참다랭이 참치 참조기 참돔이 눈에 띄자, 아내의 손길 바빠진다.


2.

우리 집 쌀강아지가 밤낮 바람과 함께 드나드는 개구멍

개나리 울타리, 상모를 노랗게 돌리고

개오동나무 아래 개복숭아꽃이 왁자하게 핀다

개복숭아 다닥다닥 열려 혜숙이의 뺨처럼 붉어져도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매일 개꿈에 젖어 살던 유년시절, 개떡에 고추장 맵게 넣은 개두릅 무침을 할머니와 함께 먹었지.

지난주엔 강원도 점봉산에 가서 개꽃 개양귀비 개질경이 개살구 개다래나무 개불알꽃을 보았다.

 

3.

오늘은 기분이 우울한 날. '소 같은 사람'하면 견딜만 한데, 왜 '개 같은 사람'하면 기분이 영 나쁠까?

‘개’ 불러보면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든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명견대회가 열리고 있다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거제개 오수개가 저마다 품격 높은 유전자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물학자가 굵은 목소리를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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