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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고집, 인해전술

by 광적 2009. 6. 26.

고집, 인해전술/김춘기

 

 

 

   영동고속도로 월곶나들목, 담쟁이가 일제히 유격 훈련처럼 방음벽 기어오른다. 너풀너풀 잎사귀도, 일등병 피부처럼 꺼칠한 줄기도 알루미늄판에 온몸을 밀착하고 뜨겁게 고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아스팔트는 산으로 바다로 씽씽 속도를 싣고 달리지만, 일제히 스크럼을 짜고, 최대한 속도를 낮춰 손톱으로 투명 벽을 타는 담쟁이 군단. 매연을 헤치며 경적 들이마시며, 연신 포복 진격 중이다.

 

   프라이팬처럼 달궈지는 플라스틱 절벽, 언제 다 덮을거나. 어쩌다 지나는 비둘기 울음으로 허기 달래는 담쟁이, 오늘은 여우비 한 자락에도 생기가 돈다. 빗줄기는 늘 땅으로 향하지만, 중력을 거부하고야 마는 저 고집쟁이. 바람 실은 트럭이 몰려오자, 벽에 밀착하여 몸을 더욱 낮춘다. 땡볕을 지고 허공을 향해 포복하는 특수부대원들. 소음도 넘지 못하는 수직 장벽을 중공군처럼 인해전술로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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