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 꽃을 추억함 / 김기찬
―두루마리 화장지 속엔 중학교 때 한 추억이 둘둘 감겨있다. 미술시간 선생님은 화장지를 구겨 꽃 두 송이 화병에 피워 놓았다. 뿌리도 줄기도 잎도 향기도 없던 종이꽃.
그 후 내게 모든 꽃들은 일종의 화장지였다
천둥치고 비 온 뒤 정원에 나가 봐라!
가느다란 초록의 장대 손을 쑥쑥 내밀어
하늘 밑구멍을 닦고는
다시 반으로 접어 한 번 더 닦은 뒤
아무데나 함부로 버린
저! 꽃, 잎, 꽃, 잎, 화장지들
하늘의 밑씻개답게 오만 잡것을 닦아도
끝내 이름마저 이쁜
백합 작약 해당 접시 목련 부용 능소 장미 모란 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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