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時調

진행형이다 / 박희정

by 광적 2010. 1. 20.

  진행형이다 / 박희정

 

12그람 커피믹스와 무의식이 녹는다

일상의 군더더기

 

순식간에 풀어지고

혀끝에 달착지근하게 스민 오랜 소통의 密書

 

입가심의 뒷맛처럼 우러나는 향의 깊이

 

건조된 분말에도

비밀의 물기 있어

 

찻잔이 다 식어가도 약속은 진행형이다

 

<오늘의 시조시인상 수상작>

 

<심사평>

올해로 4회째를 맞게 된 「오늘의 시조시인상」의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본 상은 다수의 심사위원으로 구성되어 철저하게 관리, 운영된 작품상이기 때문에 젊은 시인들은 물론 시조단의 관심 있는 상으로 부상하였다.

심사 경위를 요약하면, 1차 심사에서 90년대 이후 등단한 회원 75명을 대상으로 11명의 심사위원에게 각 6명의 작품을 추천하게 하였다. 그 가운데 다수의 추천을 받은 배우식의 ‘자전거는 둥근 것을 좋아한다’, 서정택의 ‘에스프레소’, 이경임의‘탁란’, 이승현의 ‘자전거’,임삼규의 ‘바코드를 읽다’박희정의‘진행형이다’등 6명의 작품이 최종 심사 대상작으로 압축되었다.

이어, 2심에서 다시 심사위원들에게 1차로 선정된 이들 6명의 작품 가운데 1명의 작품을 추천하게 하여 집계한 결과, 박희정 시인의‘진행형이다’가 최다 표를 얻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심사 대상 작품 230여 편을 읽는 동안 이들 작품에서 현대시조의 다양한 모색과 변화의 조짐을 찾을 수 있었고, 젊을 시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박희정의 수상작‘진행형이다’에서는 시인이 추구해 가는 시조의 방향과 그 구도를 읽을 수 있다.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순간 포착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소한 생각도 놓치지 않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주제를 쫒는 집중력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을 찾아내고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 시인의 인식세계를 짐작하게 하는 깔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모름지기 시조는 선명한 언어미감을 바탕으로 신선하고 산뜻한 이미지로써 승부해야 한다는 데 다수의 시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수상작‘진행형이다’는 현대시조의 한 진행형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수상작품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심사평 : 김연동

-심사위원 : 이우걸(의장) 박시교, 윤금초, 유재영(고문)

김연동,박기섭,박옥위,박현덕,오승철,이승은(부의장), 이정환 (감사)

 

<수상소감 - 박희정>

시조와 동행하면서 많은 것을 놓았다. 주절주절 엮여있던 일상의 반경을 좁혔다고나 할까.

연락도 뜸해지고 만남도 느슨해지자 시간이 넉넉해졌다.

내 안의 나와 즐기며 혼자 노는 즐거움은 또 혼자만의 스릴인 것을!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나르시스처럼 커피를 마신다.

내 공부방 앞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고 위풍당당한 소나무와 아카시아, 개나리 등 잡목들이 쭈뼛쭈뼛 가을 서정을 풀고 있다. 나무들과 주고받는 무언의 순간이 내 안의 들뜬 시간이다. 한 계간지에서 파워인터뷰를 하면서 어렴풋이나마 시조에 대한 이정표를 세워보았다.

2년 넘게 여러 명의 시인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격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문학을 향한 시인들의 지렛대가 내 마음의 짐 쪽으로 기울곤 했다.

시조를 쓰는 일과 가르치는 일…,

모범정답도 없고 대단원도 없는 창작의 길에 학생들과 함께 오래도록 걸어가고 있다.

올해부터 문학에 관심을 둔 중학생들을 새롭게 만났다.

시, 소설, 수필에 관심을 둔 학생들에게 시조를 알리기란 난감한 일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사명감에 마음을 다잡고 있다.

시조의 세계에 한발 가까이 온 듯하다. 기존의 작품을 그저 수용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이제는 ‘현대’라는 감각과 ‘현재’라는 시점에 관심을 두고 싶다.

현대시조라면 “지금, 이 자리의 감성”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이 진행형이듯 지금의 내 이야기도 늘 진행형이기를 바란다.

혼자 보기는 아까운 가을하늘 아래, 심사를 맡아주신 선생님들, 오늘의 시조 회원님들, 시조를 사랑하는 분들과 따스한 커피한잔 나누며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찻잔이 다 식어가도 나는 그 약속을 기다릴 것이다.

 

<박희정>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석사 졸업

열린시조학회, 나래시조, 대구시조, 동인이천 회원

시집 『길은 다시 반전이다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時調'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래가 사는 우체통/김광순  (0) 2010.07.30
장다리꽃/김영란  (0) 2010.04.29
여름도 떠나고 말면/정완영  (0) 2009.07.07
문상(問喪) /정선주  (0) 2009.05.29
初雪 / 박권숙  (0) 200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