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時調

문상(問喪) /정선주

by 광적 2009. 5. 29.

   문상(問喪) /정선주

 

은행나무 그 아래 낡은 구두 한 켤레

행길을 뒤로 한 채 돌아선 늙은 마음

마을을 지나 온 저녁비가 소슬히 덮고 있다.


살아서 걸어 온 길 죄다 끊어 버리고

뿌리 위에 기대고 누운 편안한 저 침묵

성소(聖所)에 발길 옮기듯 생각이 깊어 있다.


하늘로만 솟구치던 노오란 은행잎도

젖어 있는 돌담길을 조등처럼 밝힌다

상주도 문상객도 없는 한 생의 뒷모습.


바람이 불 때마다 지워지는 몸을 끌고

눅눅한 신발들은 버스를 타고 떠나지만

수묵의 저문 가을 속, 들국 향기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