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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것들/기타

사교육 없이 명문대 보내기

by 광적 2015. 12. 20.

사교육 없이 4자녀 명문대 보낸 전직 사교육업체 CEO 김준희

● 부모가 불안, 욕심 자각해야 사교육에 안 휘둘려  
● ‘지식 덩어리’를 소화시키는 독서의 힘  
● 간섭하고 싶은 것, 학원 보내고 싶은 것 참기  
● 영어? 문법이 아니라 ‘콘텐츠’로 하는 것
 

조영철 기자

토요일 아침, ‘사교육 1번지’로 유명한 서울의 한 동네에 간 적이 있다. 아직 오전 9시가 안 된 시각인데도, 상가 건물 엘리베이터는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로 꽉 찼다. “너희들 아침부터 어디 가니?” “영어학원이요~.” 건물 맨 위층에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에서 이름을 따온 영어학원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사교육 없이 자녀를 키우겠다고 하면 별종, 아니 무모한 허세나 부리는 부모 취급을 받는다. 사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다. 공교육이 부실하고, 대학 입시전형이 너무 복잡하다. 영어나 중국어를 못하면 ‘글로벌’ 세상을 버텨낼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남들은 다 한다’. 

이런 세태에 반기를 들고자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11월과 12월에 ‘사교육 탈출 부모 특강-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을 마련했다. 첫 번째 강연자는 ‘사교육업체 CEO’ 출신 김준희(58) 바른경영아카데미 대표. 그는 한둘도 아니고 네 명의 자녀를 사교육 없이 명문대에 진학시킨, 보기 드문 ‘스펙’의 소유자다. 

강연 반응이 꽤 좋았다는 후문을 듣고 12월 2일 서울 홍익대 앞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운동권 출신 출판인’의 대표 격인 그는 웅진그룹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웅진씽크빅 대표이사(2005~2008)를 지냈고, 능률교육 대표이사(2009~2013)를 역임한 뒤 경영 일선을 떠났다. 하지만 그를 은퇴자라고 해야 할지는 헷갈린다. 그는 리더십 교육, 경영 컨설팅 등을 하는 바른경영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최근 서울에서도 문을 연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1기 선생님으로도 합류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홍익대 앞 화실에 나와 그림을 배우는 미술학도다. 얼마 전에는 그림 에세이 ‘그림수업, 인생수업’(나무를심는사람들)을 펴냈다.

독서 용돈과 매칭 펀드 

서울 홍익대 앞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는 김준희 대표(오른쪽). 조영철 기자


▼ 사교육 관련 강연을 자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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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진 않아요. 강연 의뢰를 받고 고민이 됐어요. 사교육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으로서 사교육이 타도의 대상이라는 것은 소신에 어긋나거든요. 그랬더니 ‘우리는 사교육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입니다’ 하시더라고요. 그제야 무슨 의도인지 이해해서 강연하기로 맘먹었어요.” 

▼ 주로 자녀를 둔 30, 40대 학부모들이 강연을 들으러 왔다고요.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은 많은데 사교육에 휘둘리며 살고 싶진 않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니까 두려운 부모들입니다. 요즘이나 우리 집 애들이 한창 클 때나 문제는 두 가지예요.” 

▼ 두 가지?  

“내 아이만 처질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내 아이는 잘돼야 한다는 욕심이죠. 이 둘은 학원 없는 세상이 되더라도 해결되지 않아요. 사교육업계가 이런 두려움과 욕심을 조장하긴 하지만, 그들이 없던 욕심과 두려움을 만들어낸 건 아니죠. 물론 사회가 좀 더 건강한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어요. 각자 스스로가 판단하고 조절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부인 이현숙(57) 씨와의 사이에 3녀 1남을 뒀다. 1982년에 큰딸을 얻은 뒤 2살, 3살, 4살 터울로 아이들을 낳았다.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경기 김포의 농가 마을로 이사해 지금도 김포에서 산다. 아이들이 한창 공부할 1990년대, 2000년대에도 (아무리 김포라도) 사교육 시장은 엄연히 존재했고 갈수록 세를 불렸다. ‘김포 부부’는 어떻게 두려움과 욕심을 조절했을까. 그는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자는 데 부부가 동의했다”고 했다.  

“그 시작은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밥 안 먹어’ 하면 밥을 안 줬어요. 유치원 다니기 싫다고 하면 안 보냈고요. 방학 숙제를 안 해가는 아이에겐 ‘선생님이 때리면 맞아라’고 했습니다.” 

이 집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가계를 독립시켰다. 그러고는 뭐든 공짜로 사주지 않았다. 생일선물도 부모와 자녀 간 ‘매칭펀드’로 마련한다. 갹출 비율은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찢어진 청바지처럼 부모는 사주기 싫은데 자녀가 간절히 원하는 물건은 자녀 부담률이 올라가는 식이다. 

“20만 원짜리 새 자전거를 사면 아빠가 16만 원, 네가 4만 원 내야 하지만, 중고 자전거를 사면 아빠가 3만 원, 너는 1만 원만 내면 된다며 선택하게끔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고 자전거를 샀는데, 어느 날 도둑맞았어요. 아이가 흐뭇해하더군요. ‘새 자전거였으면 얼마나 아까웠겠냐’면서.” 

용돈은 아이들이 ‘거지만큼 준다’고 할 정도로만 줬다. 대신 책을 읽으면 용돈을 탈 수 있었다. 성경 한 챕터를 읽으면 아버지 지갑에서 100원이 나왔다. 정말 읽었는지 검사는 어떻게? 그는 “셋까지는 담합할 수 있지만, 넷이 되면 반드시 배신자가 나오기 마련이라 비밀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책 읽는 습관을 들일 때까지만 ‘독서 용돈’을 주면,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책을 찾아 읽는다”고 덧붙였다. 


공부의 본질 오해 말라 

아이들은 아빠 회사에서 나오는 학습지 정도는 했다. 학원은 고3 때 수학이나 논술 단과학원을 잠깐 다닌 게 전부다. 김 대표는 “상시적으로 약 달여먹듯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아이들은 집에서 책을 읽었다. 지금은 장성해 부모 곁을 떠난 아이들이 얼마 전 김포 집에 모여 어려서 읽은 책을 세어봤다. 각자 400~500권이나 됐다. 막내인 아들은 “누나들 따라 읽었죠, 뭐” 했단다. 

“큰아이가 6학년에 올라갈 무렵, 시골 학교에 남아 있으면 대학 못 간다며 서울로 전학 가는 아이가 몇몇 있었어요. 큰애가 제 딴에는 심각하게 저한테 서울로 위장전입 시켜달라고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동생들까지 주르륵 앉혀놓고 담판 지었습니다. ‘아버지는 책을 열심히 읽는 것만으로도 대학 갈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 알지?’ 하고 좀 치사한 이유도 댔고요(웃음).”

그는 서울대 법학과 76학번이다. 

▼ 독서가 공부다? 

“셋째 말로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니까 슬슬 실력 발휘가 되더래요. 친구들은 우선 필기해놓고 무슨 말인가 들여다보는데, 자기는 이해하면서 적었다고요. 독서하는 습관 덕분에 이해력의 깊이가 달라진 거죠. 저는 이것이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많이 하면 거친 지식의 덩어리를 쥐여줘도 꼭꼭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거지요. 이런 소화력을 가진 아이들이 공부가 어려워질수록 빛을 발해요. 셋째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점을 4.5점 만점에 4.5점을 받아왔어요. ‘너 미쳤니?’ 했더니 ‘전 공부 좀 하면 그렇게 나와요’ 하더라고요.” 

▼ 하지만 어릴 때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할 텐데요.

“많은 학부모가 공부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배운 것을 어른이 돼서 써먹을 일 있나요? 어려서 배워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소화력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점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틀리면 야단을 치지요. 아이는 두려운 마음에 공부가 즐거울 수 없어요.  

아이가 틀리면 부모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아이는 ‘왜 틀렸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답답해하다가 ‘아, 이런 거구나’ 하면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래야 소화력을 키울 수 있는데, 본말이 전도돼 부모가 사교육을 동원해 쉽게 소화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미음’만 먹이곤 해요. 제가 사장을 하면서 신입사원을 숱하게 받아봤는데, 스펙은 다들 비슷합니다. 그런데 소화력은 차이가 커요. 소화력이 뛰어난 직원들은 어떤 업무든 두려워하지 않고 잘해냅니다.” 

▼ 소화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독서를 택했네요.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새 전집이 나오면 판매하는 분들에게 새 전집을 소개하면서 ‘독서 잘하는 아이가 ‘진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어요. 이 말을 증명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면 나중에 잘됐을 때 학원 때문인지 독서 때문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다행히(?) 집 근처에 학원도 없었고….” 


사교육의 ‘반대 증거’ 

에세이집 ‘그림수업 인생수업’에 실린 김 대표의 아내 이현숙 씨의 초상화, ‘시집가던 날’과 ‘시집보내던 날’.

지금은 아파트에 살지만 김포로 처음 이사 가서는 농가주택에서 살았다. 화장실이 재래식이어서 셋째와 넷째가 ‘똥통’에 빠지는 ‘참사’도 겪었다. 시골 아이들이 학원도 안 다니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자 주변에서는 부러움 반, 시기 반 반응이 많았단다(첫째는 이화여대, 둘째는 서울대를 졸업했고, 셋째와 넷째는 각각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예전에 ‘얄미운 년’ 시리즈가 유행한 적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 게 없는데 애들이 대학에 척척 붙는 년’이었어요. 어느 날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그러더군요. ‘왜 내가 한 게 없어? 간섭하고 싶고, 보내고 싶지만 참은 게 얼만데…’ 라고요.”

▼ 부모의 고집이 좋은 결과를 낳았네요.  

“우리 아이들이 최고라는 건 아니고, 이 정도면 부모가 비싼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반대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나…. 그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굳이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저희 집처럼 하라는 게 아니라, 사교육 중독을 경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학원은 무엇이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거기에 의지하다보면 소화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본질적인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 그런데 영어는? 

“어린아이들이 영어를 왜 해야 하나요? 영어는 운전과 비슷한 도구 과목이에요. 영어 이전에 언어 능력은 이해력이 핵심입니다. 이해력이 높아지려면? 책을 읽어야지요. 1990년대 초반에 홍콩 출장을 가서 외국인들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내내 저 혼자 떠들었어요. ‘I have four children’ 하니까 다들 제 육아 경험담 듣기를 원했거든요. 그때 깨달은 것이 우선은 할 말이 많은, 즉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할 말이 있으면, 생각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배운 문법으로 표현하지 못할 스피킹은 없어요. 둘째가 대기업에 다니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가 왜 어릴 때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어요.”

▼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멘털 갑(甲)’인데요. 

“내가 불안하다는 것을,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사교육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되게 하자는 것은 욕심이 아니에요. 지나친 마음이 욕심이죠. 불안은 아이를 믿지 못하는 데서 와요. 하지만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생각이 있습니다. 믿고 기다려주세요.” 

▼ 손녀도 그렇게 키우고 있나요. 

“남의 집 애를 우리가 왜 간섭합니까? 걔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요(웃음).”
어느덧 그가 화실로 출근해야 하는 오후 2시가 다 됐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미술시간에 짝꿍에게 크레용을 빌려 쓰던 그다. 빌린 크레용이 닳을까봐 마음껏 힘주어 쓱쓱 칠하지 못했던 기억이 ‘사장실을 졸업’한 그를 화실로 이끌었다.

▼ 아직 예순도 안 됐는데, 은퇴가 빠른 게 아닌지…. 

“처음에는 좀 빠르단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요. 인생 후반전이 어떻게 될지 감조차 안 잡혔을 때는 불안했지만, 지금은 무척 행복합니다. 바른경영아카데미에서 리더십 강연을, 최근 시작한 인생학교에서는 ‘좋은 리더가 되는 법’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두 과목을 맡았어요. 어른들도 마음껏 질문하면서 배울 곳이 필요한데, 인생학교 같은 곳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그린 그림으로 책을 내면서 시즌1을 마쳤고, 지금은 시즌2를 준비 중이고요.” 


딸이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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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간디, 만델라, 김수환 추기경 등 진정성 면에서 평소 존경하는 위인들의 인물화를 그려 ‘그림수업 인생수업’을 펴냈다. 에필로그에는 시집가던 날의 젊은 아내와 둘째딸을 시집보내던 날의 아내를 그린 그림과 둘째딸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를 실었다. 학원 대신 책 읽으며 자란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됐을까, 하는 궁금함이 이 편지의 한 구절로 풀리는 듯하다.

‘제가 정말 감사하는 건, 제가 남들보다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내린 결정이라서 결과가 조금 나빠도 남 탓할 일이 없어 덜 억울하고, 책임감을 갖고 더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제 결정을 존중해주셔서 감사해요. 저에게 이런 삶의 방식과 행복을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