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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時調

(사설시조)영천사, 한낮

by 광적 2016. 9. 25.

영천사, 한낮/김춘기

 

 

 

   산사 천수경소리에

   접시꽃이 붉게 핀다.

 

   마당귀에서 햇살 쪼던 참새들이 대웅전 앞 계단을 깨금발로 오르고 있다. 장수말벌 들락거리는 단청 아래, 선잠 깬 물고기가 뎅그렁 뎅그렁 정오를 알린다. 아침부터 명부전 곁 밤나무, 쌀국수 연신 뽑아낸다. 명지바람이 밤꽃 향을 날라 대접에 수북이 담는다.

   목탁소리 고봉 한 사발, 여울물소리 두 보시기, 놋 양푼 찰랑이는 풍경소리

   물오리나무가 절 마당 다녀간 뒤, 여우비는 발자국을 살짝 남기고 간다. 흰 보자기 몇 장 꺼내든 하늘이 산마루에 내려앉는다. 신갈나무 겨드랑이에 터 잡은 까막딱따구리 딱딱 목탁 치는 사이, 밤꽃 접시꽃이 여기저기 또 피어난다.

 

   하짓날

   전생의 부부들이

   상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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