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강우식
바다 속 땅 속
몇 천만 자 깊이 유전은
발견하면서도
몸 속 유전은 왜 모를까
유전이다
내 가슴속 사랑의
샘이 터졌다
*감상:
강우식 시인은 나이 탓하며 자기 안으로 숨는 중진 이상 시인들에게 한 방 먹이고 있다. 겉으론 여윈 모습에 술 한 잔 하시면 모두 걱정스러워 하는데, 막상 뵈면 광채가 나는 눈빛 속에 시힘이 넘치는 것을 매년 출간하는 신간시집으로 보여주고 계시다.
이번 시집『필생』의 <시인의 산문>에서 당신이 밝혔듯이, 2013년 시집『살아가는 슬픔, 벽』에서부터 2014년엔 『마추픽추』, 2016년엔 『꽁치』, 2017년엔 『하늘 사람人 땅』, 2018년엔『가을 인생』, 2019년엔 『바이칼』 연가곡집, 그리고 이번 『필생』까지 “인생 마무리로서 문학이고 시” 라는 플래카드를 가슴에 붙인 양, 숨 가쁜 마라톤을 자처하시는 분이 과연 우리 시단에 얼마나 있을까 싶다.
솔직히 처음엔 그래서 혹여 전에 써놓은 것들을 묶어내시려나 했다. 그러나 감히 ,얻어 맞을 소리다. 시집마다 주제나 소재가 확연히 다르다.『사행시초』에서의 그 짧은 4행 구절 속에 함축된 시편들이 많은 시인이나 독자들의 어두운 심연을 건드려줬다면, 『마추픽추』는 아예 달리는 말을 타고 사라진 왕국 잉카제국의 역사 속으로 내달리는 강우식 선생님을,만날 수 있었다. 그 안에 분출하는 강한 시힘을 볼 수 있었다. 혼자 살면서 터득한 음식에 대한 시집 『꽁치』에서도 하루 세끼의 중요함을 벗어날 수 없기에 쓸쓸하나 익살맞게 시로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
이번 시집 『필생』은 살아가는 동안 그 누구도 지나치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랑”을 70여년 삶의 경륜을 통해 깨달은 혜안으로 다루고 있다. 노년이어서 이제는 사랑이란 감정이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이고 묻히는 기억상자일 뿐인 줄 알았는데, “무심으로 하찮은 일들이 오늘은 내 미처 몰랐던 사랑이 된다”(시 <무심한 사랑>) 오히려 새록새록 “여자를 /가랑잎 하나만도 아니게 떠나보내고/문닫고 들어서니 가슴을 찌르는 빗소리/어느덧 내 인생에도 있었구나” (시 <장대비>)라고 가슴 속 깊이 가시로 아프게 박혀있는 사랑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부부간의 사랑, 못내 이뤄질 수 없는 외톨이사랑, 스쳐가는 바람에 상채기난 사랑, 지어미 지아비사랑, 자식 사랑,,, 이 모두 내 몸 안에 유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사랑이란 한마디로 “유전이다”를 발견, “내 가슴속 사랑의/ 샘이 터졌다”를 고백하는 것이다.
강우식 시인의 멈추지 않는 사랑이 놀랍다. 사랑의 정의를 이보다 군더더기 없이 말한 시인을 보지 못했다. 유전이 그 분 안에 있으니, 활화산이 평생 그를 재우지 않고 괴롭혔다는 것을, 그래서 그리 병마를 겨우 이겨낸 분임에도 술을 가까이 했음을 헤아리게 된다.
남녀사랑이란 이제 주제넘다고,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도를 깨우친 말씀으로 시로 일러주는 주변시인들 속에서, 강우식시인은 자신에게 솔직한 시인이다.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견딘다고, <필생>을 다해 내가 이뤄낸 건 결국 사랑 그 하나였다고, 어둡고 깊은 내 우물 안 이야기를 이번 시집에서 다 퍼올린 것이다. 짧은 시행이 그래서 더 절절하다.
2019.<문학과 창작>겨울호 발표-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 / 정진규 (0) | 2020.10.05 |
---|---|
음악/오세용 (0) | 2020.10.05 |
가차 없이 아름답다/김주대 (0) | 2020.09.28 |
지금 내가 비벼지고 있다. 2 / 고종목 (0) | 2020.09.28 |
성선설/함민복 (0) | 2020.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