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家와 喪家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 김충규
喪家에 가기 전 商家에서 음료수를 사 마셨다
담벼락 밑 숨져 있는 벚꽃들
일시에 초상을 치른 그 나무의 수그린 어깨가 들썩거렸다
낳고 기르고 초상까지, 일 년마다 치러내는
그 나무의 윤회 같은 생을 생각했다
喪家에 가지 못하고
나는 商家와 喪家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내 눈 속에서 퍼덕거리는 검은 나비 떼,
소복을 입은 햇빛들이 소복하게 앉아있는 도로변,
차라리 내 속에 들어와 숨어 있겠니?
내 머리 위에 와 머무는 구름의 속삭임,
喪家에 가야 하는데 안 가면 안 되는데
商家와 喪家 사이에 저승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더 이상 발을 옮기지 못하는지
喪家에 가서 서럽게 울 일도 없는데
그저 저승의 신생아로 태어날 亡人에게 축하하러 가는 길인데
입이 이승이고 항문이 저승
그 사이를 연결한 내장이 통로인데
조금 전 마신 음료수는 잘도 내려가는데
내가 왜 이러고 서성거리나
헛것처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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