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하학 / 김찬옥
이브의 손끝에서
똬리를 틀고있던 뱀의 입이 열린다
부드럽고 탄력있는 깊고 깊은 구멍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서서히 점령한다
발끝을지나정강이를지나무릎을지나허벅지를지나
깊은골짜기를지나엉덩이를지나배꼽언저리에서멈춘다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뱀은 저 북방의 경계를 침범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랫도리와 더욱 밀접하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어둠에 들 즈음
다시 체위를 바꿔
배꼽을지나엉덩이를지나깊은골짜기를지나
허벅지를지나무릎을지나정강이를지나
발뒤꿈치를지나발끝을빠져나온다
작은 상처 하나에도 민감한 뱀이
온 종일 그녀와 한 몸일 수 있었다
그녀가 없는 방 한 쪽 구석에
똬리를 틀고있는 고탄력 팬티스타킹,
이브의 형이상학을 모르는 저 뱀!
시집 『물의 지붕』 2009년 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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