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조오현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해설> 아지랑이는 무산스님의 시집 [아득한 성자](시학 2007)에 수록된 시이다.
"한 동안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는 듯한, 누군가에게 내 무언가를 자꾸 빼앗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지만 끝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뿐인 듯한 느낌이랄까요. '난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끝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패배감이 무력감을 동반하여 스멀스멀 올라오는 겁니다. 조오현 시인의 시를 보니 그 때가 떠오르네요.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물러 설 길'도 없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무언가'는 아지랑이처럼 애처롭고도 허무한 것이었겠지요. 삶이든 죽음이든 가진 것 없는 우리는 어지럽고 불투명한 곳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겠지요." (어느 블로그에서 올린 <아지랑이>에 대한 독자의 덧글이다.)
* "무산 조오현 스님의 시가 보여주는 이런 삶에 대한 통찰과 구도적 명상의 깊이는 우리를 숙연한 삶의 절벽으로 내몰곤 한다. 평생을 헤매어 찾아온 곳이 낭떠러지라며, 평생을 붙잡고 살아온 것이 어지러운 아지랑이라는 이 오도의 깨침 앞에서 한 번쯤 깊은 숨 쉬며 쉬어갈 일이다. 우리 몫의 인생길은 지금 어디쯤이며 이제껏 붙잡고 온 아지랑이는 또 얼마 만큼인지." (박권숙/시조시인)
* 2008년 8월 6일 서울신문의 인터뷰에서 조오현 스님의 말이다.
“스님은 말과 글을 버리는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글을 버려야 되는 사람이 시와 글을 쓴다는 게 너무 세속적인 일이죠. 더더구나 상을 받는다는 것은….” 시조시인으로서는 처으으로 제16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무산 조오현 시인은 말과 글을 버려야 하는 스님이 시를 써서 상을 받는다는 게 부끄럽다며 겸사의 말부터 꺼냈다. 그래서인지 1978년 첫시집 ‘심우도(尋牛圖)’를 상재한 이후 30년 가까이를 절필하다시피 하다가 2007년 이번 수상작 ‘아지랑이’가 실린 시집 ‘아득한 성자’ 등 ‘겨우’ 두 권의 시집을 내는 데 그쳤다.
수상작 '아지랑이'는 죽음을 앞두고 걸어온 삶을 반추하며 웅숭깊은 삶의 통찰과 인식을 담아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6개월간 밥은 거의 안 먹고 죽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아지랑이’를 붙들고 살았다는 회한에 사무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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