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문혜진
내 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그곳에 홍어가 산다
극렬한 쾌락의 절정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
오랜 세월 미식가들은 탐닉해왔다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온 우주를 빨아들일 듯한
여인의 둔덕에
코를 박고 취하고 싶은 날
홍어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입 안 가득 퍼지는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코는 곤두서고
아랫도리가 아릿하다
중복 더위의 입관식
죽어서야 겨우 허리를 편 노파
아무리 향을 피워도 흐르던
차안此岸의 냄새
씻어도
씻어내도
돌아서면 밥 냄새처럼 피어오르는 가랑이 냄새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밥
붉어진 눈으로
홍어를 씹는다
- 문혜진, ‘홍어’
서부 개척시대, 어느 극장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유명 배우가 악역을 연기하던 중, 분노한 관객의 총탄에 쓰러졌다. 여기서, 배우는 악인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한 관객처럼 연기된 현실과 실제 현실을 종종 혼동한다. 이미지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방증이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홍어’의 경우, 언어는 결코 허상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크루드하게 발가벗겨 놓고 있다. 이 정도면 ‘말’과 ‘사물’이 별개라는 근대의 유명론이 무색해진다. 다시 말해 이 사물 같은 언어를 통해 우리는 말이 실제가 되는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을 경험한다.
소쉬르의 말대로 언어가 ‘실체’가 아니고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은 언어의 상식에 속한다. 이 형태는 자의적이기에 대상과 일치할 수 없다. 즉 언어는 실체의 대체물일 뿐이다. 그만큼 언어는 보조적 심급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나 ‘홍어’를 보면 소쉬르의 말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도 강력하게 말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홍어의 냄새에 얹어 말하고 있는 이 시는 예사 이미지를 갖다 쓴 시와도 한참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집 아이가 ‘텔레토비’를 보면서 브라운관 속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서 아이는 브라운관 속 이미지와 실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를 대하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홍어의 그 특유한 오묘한 냄새를 ‘극렬한 쾌락의 절정/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에 비유한 표현은 우리를 미몽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특이하게도 이 시어들은 개념어임에도 사물언어에 가까운 날 이미지로 다가온다. 시적 화자가 개념적인 거리를 두지 않고 자신이 느끼고 실감한 내용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표현도 마찬가지다. ‘온 우주를 빨아들일 듯한/여인의 둔덕에/코를 박고 취하고 싶은 날’도 비유적 이미지로서보다는 즉각적인 실체로서 다가온다. 다시 말해 이런 시적 표현들은 홍어를 환기하는 보조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를 지시하는 사물의 언어로 즉물성을 띠고 있다.
“코는 곤두서고/아랫도리가 아릿하다”
언어의 끝은 어디인가. 여기, 문혜진의 '홍어'는 그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으로 발기되어 있다. ‘미친 존재감’이란 이런 시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언어는 때로 이미지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시의 '극적' 효과 때문이다. 어린 새끼사자 알렉산더의 왕사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걸 노렸을 것이다. 시가 위험하다며 적의를 드러낸 플라톤 형님의 진심을 조금은 이해할 듯도...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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