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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어떤 출토/나희덕

by 광적 2021. 9. 5.

어떤 출토/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 올리는데

흙 속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각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 데 간 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 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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